[오늘의 설교] 그는 나보다 옳도다

입력 2016-11-28 20:49

‘당신이 나보다 옳다’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인이기에 그런 말을 못합니다. 이 세상 모든 문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에서 비롯됩니다.

창세기에서 유다는 요셉을 판 죄책감, 형제들과 아버지에 대한 환멸로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 이방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내면서 영적으로 내리막 인생을 삽니다. 이처럼 나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배우자 탓, 공동체 탓을 하며 그들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믿음의 공동체에 끝까지 있어야 할 이유는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차별이 많고 교만한 사람인지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유다는 불신결혼을 하고 아들 셋과 며느리 다말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악한 장자 엘이 죽게 되자 계대혼인법에 따라 시동생 오난이 다말에게 후사를 안겨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난은 성적인 쾌락만을 맛보려 하다가 죽었습니다. 며느리 다말로부터 기업을 잇기 위해서는 막내아들도 줘야 했지만, 죽은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서 악했음을 깨닫지 못한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불행을 가져왔다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회개의 반대는 책임전가인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유다가 죄책감으로 공동체를 떠나 불신결혼을 하고 문제 자녀들이 방종해 죽은 것은 사실 유다가 행한 악의 결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말은 기업이 이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기에 창기로 변장했습니다. 다말이 며느리임을 알아보지 못한 유다는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넘겨주며 행음을 하고, 다말은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언약의 주도권이 다말에게 넘어갑니다. 부끄러움 당할 것을 생각한 유다는 세상 친구 히라를 통해 죄를 지우려하지만 오히려 죄의 흔적만 남게 됐습니다. 자기도 행음을 했건만 며느리가 행음했다는 소식을 듣고 불사르고 죽이라고 명합니다.

우리가 유다처럼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서 ‘너 때문이야’ ‘부모 때문이야’ ‘환경 때문이야’라고 남 탓을 한다면 죄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내가 계속 무너지고 있는데도 내 죄가 인정되지 않아 결정적인 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 유다는 다말이 언약의 후사를 위해 하나님의 옳으심으로 행했음을 깨닫고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다말의 임신이 유다 자신의 악에 비해 의롭다고 공동체 앞에서 고백합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처럼 유다의 깨달음을 위해서는 다말의 죽어짐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 혼자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말이란 지체의 희생을 통해 ‘그는 나보다 옳도다’의 내 책임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다는 것은 내 죄를 인식할 때만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다말의 부끄러움을 무릅쓴 이 적용은 시아버지 유다를 살리고,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 아들을 주심으로 두 아들의 죽음까지 보상하셨습니다. 후에 보아스가 룻을 받아들일 때 성문의 장로들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 같게 하기 원하노라’고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저주이고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유다가 예수님의 조상이 됐습니다. 집집마다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 다말과 같은 한 사람이 중심을 잡으면 다 살아납니다. 이렇게 ‘너는 나보다 옳도다’를 부르짖으면 내 곁의 사람들이 살아나고 함께 천국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김양재 목사 (우리들교회)

약력=△서울대 음대, 백석대 신학대학원 △전 서울예고·총신대 강사 △큐티선교회 대표 △해외유학생수양회(KOSTA)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