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암살 피하는 종목 있다면 내가 금메달”

입력 2016-11-28 04:18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630여 차례 암살 위기를 견뎌내고 고령(90세)으로 25일(현지시간) 숨을 거뒀다. 그는 반세기 동안 강력한 공산주의 지도자로 집권하면서 수많은 일화와 어록을 남겼다. 카스트로는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좌파 혁명을 지원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미국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는 “암살에서 살아남기라는 종목이 올림픽에 있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사시를 대비해 항상 권총을 차고 다니면서도 방탄조끼는 입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1979년 기자들에게 가슴을 까보이며 “힘이 센 ‘도덕의 방탄조끼’가 항상 나를 보호해준다”고 자랑했다.

그는 군복 차림에 시가를 문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됐다. 입에서 시가를 떼는 순간이 거의 없었던 카스트로는 85년 갑자기 금연을 선언했다. 몇 년 뒤에는 “시가 박스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적에게 줘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흡연이 해롭다는 얘기였다.

덥수룩한 수염도 카스트로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수염을 깎지 않을 생각이다. 좋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완수하면 그때 수염을 깎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혁명 동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처럼 남성적인 매력이 넘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공식적으로 두 번 결혼했지만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서 10명이 넘는 자식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사랑도 남다르다. 올 들어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 등 외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왔다.

카스트로는 적이 많았지만 동지도 많았다. 고(故)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쿠바 혁명에서 영감을 받아 인종차별 저항운동에 나섰다. 만델라는 1990년 석방된 뒤 카스트로와 여러 차례 교류했다.

전설적인 미국 권투선수 고(故) 무하마드 알리는 1996년 쿠바 방문 때 카스트로와 장난스럽게 잽을 주고받는 사진을 남겼다. 미국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1984년 쿠바에 억류된 미국인 22명 석방 협상으로 인연을 맺었다.

콜롬비아 출신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고(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막역한 사이였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와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카스트로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카스트로는 지난 4월 공산당 행사에서 “나는 곧 아흔 살이 된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고별사를 미리 한 셈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