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이야기]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순무김치

입력 2016-11-28 20:49

경기도 동두천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3층짜리 교회 건물이었는데, 보일러 시설을 갖춘 1층에서 어린이 예배와 새벽기도회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친 뒤 3층 사택으로 올라가자 출입문 앞에 검은 비닐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작은 접시에 순무김치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순무김치를 참 좋아합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걸 곧잘 먹곤 했는데 아마도 새벽기도에 나오신 성도님 중 한 분이 몰래 놓고 간 것 같았습니다.

순무는 독특한 향이 나고 특유의 맛이 있습니다. 강화도 특산품인 순무는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 즐겨 먹는 음식도 아니었습니다. ‘목사를 생각하셔서 일부러 만들어 오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예배시간에 순무김치 이야기를 꺼내며 “태어나서 제일 맛있게 먹었는데 어느 분 솜씨인지 궁금하다”고 수소문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순무김치’ 주인공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성도님들은 승합차를 함께 타고 다녔습니다. 새벽에 함께 차를 타고 오면 순무김치 냄새가 났을 테고,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있으면 분명 누구인지 알 것도 같았는데, 다들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며칠 후 새벽기도를 마치고 잠시 기도를 더 하다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사택으로 올라왔습니다. 바로 그때 3층에서 내려오시는 한 할머니 권사님과 마주쳤습니다. “에구머니나!” 권사님은 당황해하시며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순무김치의 주인공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권사님의 거친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선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권사님은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했는데 그만 들켰다”며 무안해 하셨습니다.

알고보니 권사님은 혹시 순무 냄새가 나면 어쩌나 싶어 새벽에 승합차를 타지 않고 30분 넘게 홀로 걸어서 교회에 오셨더군요. 한 손에는 성경책, 한 손에는 순무김치가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서 말입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는 목사의 말에 아들을 시켜서 강화도에서 나는 순무를 사오게 해 만들어 오셨던 겁니다.

목회 역시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해주시고 마음을 써주시는 성도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나의 목회는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성도들의 소중한 사랑 덕분입니다. 이 고백과 함께 오늘도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성도들의 손을 꼭 잡아봅니다.

박대준 목사<여의도제일교회>

약력=△서울장신대·장로회신학대대학원 △미국 그레이스신학대학원 △월드비전 서울 영등포지회 이사 △예닮동산 운영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