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는 교육부,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입력 2016-11-28 04:24

교육부가 청와대와의 불화설을 일축하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으로 다시 돌아섰다. 편찬기준에서 확인된 ‘건국절 사관(史觀)’도 다시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교육부 내부에선 극도로 악화된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출구 전략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준식(사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정 역사 교과서 공개를 하루 앞둔 2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재로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가능성은 없다”며 “철회 얘기가 나오는데, 철회한다면 무슨 고민을 하겠는가. 철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지난 2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교과서 내용 공개 뒤 현장 도입을 검토한다”란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자 국정화 철회를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가 즉시 “강행 방침에는 변함없다”고 반박하면서 청와대-교육부 갈등설이 불거졌다.

이후 청와대는 김용승 교육문화수석을 내세워 교육부와 의견 조율에 나섰다. 김 수석이 이 부총리에게 연락해 26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 부총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청와대와 교육부가 반목하고 충돌하고 각을 세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청와대와의 불화설을 부인하고 국정화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편찬기준도 적극 방어했다. 이른바 건국절 사관과 교과서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집중 해명했다.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 Q&A’란 자료를 내고 “교과서 236쪽에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 8. 15.)’고 기술했다”며 교과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지만 1919년 3·1운동을 계승한다는 방식으로 절충을 시도했다. 앞서 25일 전격 공개된 편찬기준에는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쓰였다. 종전에는 ‘정부 수립’이었지만 사실상 ‘건국’으로 격상시켰다.

교육부 관계자는 “1948년 행정부가 수립되면서 비로소 대한민국이 수립된 걸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을 포함해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나라는 독립을 선언한 날을 건국으로 쓴다. (우리 국토를) 1948년까지 실효지배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1948년 건국됐다고 보는 건 친일 행위에 면죄부 준다”며 “‘국가도 없는데 충성할 대상도 없었다’는 친일파 주장을 교과서에 담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26일 전국에서 190만명이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4%로 떨어졌다. 국정화를 강행하면 교육부 조직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걱정이 내부에 가득한 상태다. 교육부 내부에선 교과서 적용 시점을 1년 미루거나, 일부 시범학교에서만 도입하거나 기존 검정 교과서와 경쟁하도록 하는 등의 다양한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세 방안 모두 사실상 국정화를 철회하는 것으로 비쳐 고민이 깊은 상태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