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혁명의 별’ 역사 속으로… 슬픔에 잠긴 쿠바
입력 2016-11-27 18:48 수정 2016-11-27 21:22
쿠바 수도 아바나는 슬픔에 잠겼고,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쿠바계 주민 밀집지역 ‘리틀 아바나’는 환호했다.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죽음은 그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듯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다른 누군가에겐 기쁨을 가져다줬다. 쿠바 내부와 중남미 좌파 정부는 ‘혁명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음을 슬퍼한 반면, 독재를 피해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인들은 독재의 종언을 기뻐했다.
20세기 혁명 아이콘, 역사 속으로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25일 밤 10시29분(현지시간) 쿠바 혁명의 총사령관이 90세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라울은 유언에 따라 고인은 화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쿠바 정부는 26일부터 9일간 애도 기간을 가진 뒤 다음달 4일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장례식을 거행한다. 이곳은 카스트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며 쿠바 혁명 승리를 선언한 ‘혁명의 도시’다.
추모 행사는 28일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기념관, 29일 아바나 혁명광장, 다음달 3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안토니오 마세오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화장된 카스트로의 유해는 30일부터 전국을 순회한 뒤 다음달 4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된다.
쿠바 국민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혁명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아바나의 한 주민은 “우리 쿠바인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카스트로주의자(Fidelista)였다”고 말했다.
반면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에 사는 쿠바계 이민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죽을 터뜨리거나 미국·쿠바 국기를 흔들고 서로 얼싸안았다. “사탄이여, 이제 카스트로는 너의 품으로 갔다”고 써 붙인 식당도 있었다. 한 쿠바계 주민은 “이것은 죽음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우리가 오랜 세월 기다려온 자유의 시작을 축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세기 집권…미국 대통령 11명 괴롭혀
1926년 스페인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친미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맞서 게릴라가 됐다. 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에 실패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년 뒤 특별사면되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만나 세력을 모으고 56년 쿠바로 돌아와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결국 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다. 이후 49년간 쿠바를 통치했다.
재임 49년은 고(故)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70년 재위)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현재까지 64년)에 이어 3번째로 길다. 왕족이 아닌 지도자로는 20세기 최장기 집권 기록이다.
카스트로는 극렬 반미(反美) 지도자였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인 쿠바는 카스트로가 이끄는 동안 초강대국 미국에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였다. 뉴욕타임스는 “11명의 미국 대통령을 괴롭혔고 세계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핵전쟁 위기는 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말한다. 당시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갈등을 빚어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경제는 실패…생전에 대미 관계개선 목도
카스트로는 미국과의 극한 갈등을 감내하며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좌파 혁명을 지원했다. 공산혁명 성공의 씨앗을 세계 각국에 전파한 것이다.
그러나 쿠바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카스트로가 자국 경제 개혁에 의지가 없었던 것이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에 자극제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빅터 가오 중국에너지안보연구소장은 “카스트로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였지만 위대한 경제 지도자는 아니었다”며 “그가 타계함으로써 쿠바의 다음 세대는 경제 개혁과 발전이 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스트로는 건강 문제로 2006년 라울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쿠바와 미국이 오랜 단절을 끝내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도 생전에 지켜봤다. 2014년 국교 정상화 선언에 이어 올해 3월 아바나에서 라울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글=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