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홍보 전문가 있으니 KT에 채용되도록 하라”

입력 2016-11-28 00:02

“이동수라는 홍보 전문가가 있으니 KT에 채용되도록 황창규 KT 회장에게 연락해라. 신혜성씨도 이씨와 호흡을 맞추게 하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월과 8월 안종범(57·구속 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불러 거듭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씨와 신씨는 ‘모스코스’와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이하 플레이그라운드)’를 잇따라 설립한 최순실(60·구속 기소)씨와 차은택(47·구속 기소)씨의 측근들이었다. 대기업 광고를 따내기 위해 측근을 대기업 임원에 앉힌다는 최씨 등의 ‘큰 그림’대로, 안 전 수석은 KT 측에 ‘윗선 관심사항’을 알렸다.

박 대통령은 이들이 실제 KT 임원이 된 이후인 지난 2월에도 안 전 수석을 불러 “이씨와 신씨의 보직을 KT 광고업무 총괄담당 직책으로 바꿔 주라”고 지시했다. 또 “플레이그라운드가 KT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되도록 하라”고도 말했다. 안 전 수석은 ‘VIP 관심사항’이라며 황 회장과 이씨에게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전화 몇 통이 오간 결과 플레이그라운드는 심사결격에도 불구하고 돌연 KT 광고 7건을 수주했고, 4개월여 만에 5억16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박 대통령은 신생업체 모스코스가 견실한 포스코 계열 광고사 ‘포레카’를 넘겨받는 데도 도움을 주려 했다. 지난해 2월 안 전 수석을 불러 “‘포레카가 대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포스코 권오준 회장과 포레카 김영수 대표를 통해 매각절차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안 전 수석은 권 회장에게 전화해 “모스코스가 포레카를 인수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

원래 포레카를 인수하기로 돼 있던 중소업체 ‘컴투게더’의 대표 한모(60)씨는 청와대를 운운하는 별의별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김홍탁(55) 플레이그라운드 대표를 포함한 차씨의 측근들이 한씨를 만나 “포스코 최고위층과 청와대 어르신의 지시사항인데, 우리가 지분 80%를 가져가겠다” “한 사장님은 2년간 월급 사장을 하기로 얘기가 됐다”고 협박했다. 한씨가 굴하지 않자 송성각(58·구속 기소)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막말로 묻어버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세무조사를 해서 없애라고까지 한다”고 전했다. 물론 ‘비선실세’ 최씨의 말을 옮긴 것이었다.

27일 검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등 혐의로 ‘문화계 황태자’ 차씨 등 5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의 최정점에 있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차씨는 2014년 4월 고영태(40)씨를 매개로 최씨를 만났고, 최씨의 도움으로 같은 해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 자리에 오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을 시켜 KT 임원들의 인사에 개입한 박 대통령을 차씨의 범행 공모자로 적시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뒤집고 국정농단 수사 한 달째인 현재까지 검찰 조사에 불응하면서 그가 왜 차씨와 최씨의 부정한 이익에 앞장섰는지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