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親文 패권주의 우려스럽다

입력 2016-11-27 18:58

궂은 날씨였지만 촛불은 더 크게 타올랐다. 2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절제된 분노를 다시 표출했다. 시종일관 평화를 유지했기에 “더 이상 못 참겠다. 퇴진하라”는 울림은 컸다. ‘청와대를 비우그라’ ‘퇴근혜’ ‘하야해 듀오’ 등의 풍자는 축제 분위기를 북돋웠다. 수백만의 집단이성은 나라의 품격을 끌어올렸다.

추위에도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바라는 건 대통령 퇴진에 머물러 있지 않다. 퇴진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같은 해괴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데까지 나가 있다. ‘국민이 주인인 신명나는 나라’를 만드는 건 정치권 몫이다. 하지만 정치권 행태는 답답하다. 촛불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벌써부터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앞에 놓인 일차적 과제는 대통령 탄핵이다. 이르면 이달 말 탄핵안이 발의돼 내달 초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새누리당 비박계도 탄핵에 적극적이어서 탄핵안 가결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야권으로선 똘똘 뭉쳐야 하는 민감한 시기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친(親)문재인계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쓸모없는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친문계 주장이 생뚱맞다. 여당 내 비박계 협력 없이는 탄핵할 수 없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박근혜정부 부역자들과 연대해선 안 된다”고 국민의당을 압박한다. 친문계가 대통령 탄핵을 진심으로 원하는 건지, 탄핵안이 부결되기를 기대하는 건지 아리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어느 쪽이든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인 문 전 대표 입장에선 손해될 게 없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탄핵이 마무리되면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풀어야 한다. 웃으면서 권좌에서 내려온 대통령이 없는 나라.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 반복적이다. 제왕적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고칠 때가 됐다는 데 국회의원 300명 중 200여명이 공감하고 있다. 국민 다수도 개헌에 찬성한다. 대통령 1인의 과도한 권력을 분산시키고, 효율적인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국민을 위한 통치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개헌론에는 최순실 사태에 대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책임을 물타기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지난 대선 때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면서 차기 대통령 임기 초반에 개헌하면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마디로, 개헌을 하지 말고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뽑자는 의미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만큼 현 상태로 가면 본인이 5년 임기의 대권을 쥘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을 차단하는 효과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다 된 양 오버한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때문에 개헌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4·13총선 민의는 친박·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심판이었다. 독선과 오만이 공통점이다. 친박 패권주의는 새누리당을 제2당으로 전락시켰다. 친문 패권주의는 호남에서의 참패를 불러왔다. 친박·친문 모두 반성하는 듯하더니 슬며시 전면으로 복귀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체제, 민주당 추미애 체제가 그것이다. 이 중 친박은 조만간 소멸될 것이다. 반면 친문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착착 진행 중이다. 거의 종착점에 다다랐다고 여기고 있다. 계획대로 차기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광장의 민심과 부합하는 걸까.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