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나를 살리는 ‘절대 음식’

입력 2016-11-27 19:09

아홉 살 때의 일이다. 목도 붓고 열도 나고 입안도 다 헐어 먹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나는 아프면 책상 밑으로 이불을 끌어다 놓고 그 밑에 드러누워 나오지 않았다. 약을 먹이고 열을 내리느라 찬 수건을 이마에 대주던 엄마는 아무것도 안 먹고 앓는 딸을 보는 게 속상하셨을 것이다.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뭐라도 엄마가 구해다 줄게 말해 보라고 하셨다. 형제가 많고 넉넉하지 못해 부모님은 나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실 수 없었다. 그럴 때는 아픈 것이 장땡이다. 아무리 아파도 엄마가 나에게만 쏟아주는 사랑이 달콤했다. 그래서 어린 맘의 나는 감기가 얼른 낫지 않고 오래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커피랑 노른자 안 터진 계란 프라이.” 내가 엄마에게 먹고 싶다고 말한 두 가지. 당시 엄마는 집에 손님이 오실 때마다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내오셨다. 그리고 건넛마을 큰엄마도 커피를 무척 좋아하셔서 사촌언니랑 놀다 큰엄마 몰래 커피를 타 먹은 적이 꽤 많았다. 엄마는 네가 커피를 언제 마셔봤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둘, 둘, 둘’ 황금비율의 믹스커피를 타서, 계란 노른자를 터지지 않게 부쳐 쟁반에 받쳐다 주셨다. 그때 유치원생이던 여동생이 그 쟁반에 아끼던 귤 하나를 얹어 주었다. 언니 감기 빨리 나으라고.

주중에 엄마의 칠순을 맞아 여동생이랑 엄마랑 일본 ‘유후인’으로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 둘에게 그때의 일화를 이야기해주니 전혀 기억 안 난다고. 그런데 왠지 너라면, 언니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말을 동시에 하며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내 동생도 감기 걸렸을 때 그렇게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자기는 복숭아 통조림이었다고 한다. 그때도 엄마는 복숭아 통조림을 그릇에 담아 쟁반에 받쳐 동생에게 주었다고. 그래서 지금도 아파 입맛 없을 때 먹고 싶은 건 복숭아 통조림이란다. 그때 엄마가 커피와 계란 프라이, 복숭아 통조림을 내오던 동그란 스테인리스 쟁반은 세월의 흠이 많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 친정집에 있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