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했던 아합왕 시대의 선지자로 불신(不信)과 불의(不義)와 불황(不況)의 시대에 사역했던 선지자입니다. 왜 북이스라엘은 이런 시대를 맞이했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경제적으로 번성했던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는 말씀의 기근을 만나서 동서남북의 사람들이 비틀거리고, 젊은 남녀가 쓰러졌다고 전합니다(암 8:11∼1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의 삶은 불의와 불황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시대에도 평범한 사람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특별한 삶을 살도록 부르십니다.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말씀 속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순종하면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마르지 않는 기적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에 있는 엘리야 선지자를 160㎞나 떨어져 있는 시돈 땅의 사르밧으로 보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그곳에서 귀부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조차 없는 과부를 만납니다.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런 과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더니 나아가 떡 한 조각도 가져오라고 합니다. 과부는 자신의 형편이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한 끼를 때우는 정도밖에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을 위해 떡 한 개를 만들어 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 비가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합니다.
사실 엘리야 선지자도 매정하고 무자비한 요구, 몰염치와 몰상식처럼 보이는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축복의 말을 하긴 쉬워도 이런 어려운 얘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황당한 요구에 순종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도 순종해 말씀을 전했고, 사르밧 과부도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상식을 무시하면서 살아서도 안 되지만 상식 수준에서 살아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상식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 말씀의 능력으로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을 배우는 곳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 틀에 갇히지도 않습니다. 선지자의 황당한 요구와 과부의 순종으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자신의 삶에 기적을 창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늘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에 삶의 현장에서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근을 만나는 데 이 가정에는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순종함으로써 경험하는 삶이 불신과 불의와 불황의 시대를 축복의 삶으로 바꾸는 삶의 비결입니다.
이병철 목사 (춘천 주향교회)
약력=△한국성서대 △총신대신학대학원 졸업
[오늘의 설교] 말씀의 능력으로 마르지 않는 삶의 기적을 경험하라
입력 2016-11-27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