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술위, 규정 어기고 ‘백건우 뉴욕필 협연’ 지원 논란

입력 2016-11-27 19:09 수정 2016-11-27 19:44
지난해 고희를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 오는 12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과 관련해 의도치 않게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빈체로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규정을 위반하고 유명 피아니스트 백건우(70)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뉴욕필) 협연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건우는 오는 12월 8∼10일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에서 체코 지휘자 이리 벨로흘라베크가 지휘하는 뉴욕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예술위는 지난 11월 1일 발표한 ‘국제교류플랫폼 협력지원’ 공모사업 지원대상으로 발표한 8건 가운데 백건우의 뉴욕필 협연에 5000만원을 지원하다고 발표했다. 예술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지원대상 8건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유럽과 한국에서 주로 활동해온 백건우가 뉴욕필의 정규 시즌 공연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의미와 별개로 예술위의 지원은 전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원대상 등 규정을 어긴 것으로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예술위에 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은 한국 국적의 예술가, 예술단체 그리고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전문예술 법인 및 단체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신청은 백건우도 모르는 사이에 지난 3월 미국 뉴욕에서 만들어진 ‘백건우의 뉴욕필 협연 펀드레이징 위원회’(이하 펀드레이징 위원회)가 신청했다. 펀드레이징(기금마련) 위원회 대표인 미국 국적의 김태자(세종솔로이스트 초대 이사장)씨가 여동생 김경순(강원대 음악학과 명예교수)씨의 이름으로 신청했다.

펀드레이징 위원회는 규정상 예술위에 지원을 신청할 수 없다. 설사 자격이 되더라도 대표가 미국 국적이라는 점에서도 규정을 위반했다. 이 위원회는 또 기금 마련을 위해 공연 후 열리는 만찬회 티켓을 500달러에 팔고 있다. 이와 관련 백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만찬회 티켓을 판다는 얘기는 최근 들었지만 예술위에 기금 신청한 것은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사실 백씨의 뉴욕필 협연이 성사되기까지는 김태자씨의 역할이 컸다. 2014년 백씨가 반기문 UN총장의 초청으로 뉴욕 UN본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기획했고, 이 자리에 뉴욕필 관계자들을 초청해 백씨를 소개했다. 뉴욕필은 지난해 백씨를 정기공연 협연자로 선정했다.

김태자씨는 통화에서 “뉴욕필에서 백건우 선생님 공연 성공을 위해 약 10만 달러의 후원을 부탁해왔다. 펀드레이징 요청이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뉴욕필과 한인 커뮤니티, 한국인 음악가들과의 관계를 위해 나섰다”면서 “백 선생님 본인이 이런 세세한 내용까지 알면 민망할 것 같아서 굳이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뉴욕필에서 이번 공연을 담당한 에드워드 임은 메일을 통해 “뉴욕필에서 연주자를 초청할 때 티켓 판매만으로는 기금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늘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다. 펀드레이징 위원회의 도움으로 극장 사용료, 콘서트 제작비, 라디오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다만 한국 예술위에 기금을 신청한 것은 전적으로 펀드레이징 위원회가 했으며 뉴욕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예술위의 ‘국제교류플랫폼 협력지원’ 사업을 심사했던 심사위원들은 “백건우 같은 유명 피아니스트의 협연을 예술위가 지원한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의 이름값을 보고 결정했다”면서 “하지만 백건우 본인은 지원금 신청도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펀드레이징 단체에 예술위가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예술위가 지원한 기금이 펀드레이징 위원회를 통해서 뉴욕필에 다시 지원되는 것은 제3자에게 기금을 양도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

예술위 담당자는 “펀드레이징 위원회의 지원 신청 자격 여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다만 백건우 선생님이 이번 지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펀드레이징 위원회에 반납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