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예정된 교과서 공개 일정은 소화하되 일선 학교에 적용하는 문제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최순실 사태로 정책 추진 동력을 잃자 사실상 출구전략 찾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2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그동안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왔다”며 계획대로 28일 국정 역사 교과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철회할 의사가 없는지 묻자 “교과서를 공개한 다음 판단할 문제”라고 답했다. 교과서 공개는 강행하더라도 실제 학교에서 사용할지는 여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당초 11월에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검토본을 공개하고, 내년 3월 일선 학교에 교과서를 배포할 예정이었다. 이 장관도 지난 7월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3월 일선 학교에 배포한다는 일정은 변동이 없다”고 말했고, 지난달 21일에도 방송에 출연해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을) 연기하게 되면 당장 내년에 역사 과목 수업에 지장을 가져오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5차 촛불집회를 하루 앞둔 이날 국정 교과서 강행 입장을 유보적 태도로 전환했다.
교육부의 입장 변화는 정부·여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교육계 내부 보수적 성향의 단체마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등을 돌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순실 사태 이후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도 다시 주목받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했던 교총은 지난 12일 대의원대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음이 헌법정신”이라며 “1948년을 건국절로 표기한다면 국정 교과서를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가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일’이라고 표현할 경우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날 공개된 ‘2015 역사과 교과용 도서 편찬 기준’에는 8월 15일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됐다.
이날 교문위에서는 ‘국정 교과서 금지법’(역사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 상정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벌어졌다. 민주당 간사 도종환 의원이 국정 교과서 금지법을 안건으로 상정해달라고 요청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법안이 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결국 법안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신청으로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에 회부된 안건은 여야 간사가 협의하지 않을 경우 90일간 상임위에 올릴 수 없다. 야3당 원내대표가 공동 발의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폐기촉구 결의안’도 전체회의에 상정됐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안건조정위에 회부됐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사진= 최종학 선임기자
첨예한 갈등 ‘국정 교과서’ 추진 동력 사실상 상실
입력 2016-11-25 18:19 수정 2016-11-25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