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호남만 가면 치고받는 두 야당

입력 2016-11-26 00:02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두 야당의 ‘호남발 설화(舌禍)’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호남만 방문하면 앞다퉈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이를 빌미로 다시 날 선 신경전을 펼친다. 탄핵 정국을 주도하는 한편으로 ‘야권의 심장’인 호남을 겨냥한 야당들의 구애 작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24일 전남 나주에서 열린 강연에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겨냥해 “추 대표가 당대표가 됐을 때 ‘실수할 거다, 똥볼 많이 찰 거다’라고 했는데, 제가 점쟁이가 됐다”고 말했다. 전날 광주를 방문한 추 대표가 “청와대에 식수를 끊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새누리당에 표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를 놓치지 않고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은 “적당히 좀 하시라”며 즉각 반발했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25일 “왼손은 야권과 잡고 있지만 오른손은 박근혜정권의 부역자들과 잡고 싶은 건 아닌지 의심된다”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양당 지도부의 설전은 표면적으로는 탄핵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두 야당은 야권 공조를 통해 탄핵 국면을 함께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와의 연대 문제에는 온도차가 있다. 국민의당은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탄핵안 주도는 야권의 몫’이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기조가 두 대표의 발언에 그대로 묻어난 셈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양당의 최대 지지기반이자 텃밭인 호남 패권을 놓고 벌이는 주도권 다툼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지난 총선 당시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광주 발언’은 양당이 벌이는 호남발 논쟁의 ‘진앙’ 격에 해당한다. 총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호남에서 센 발언을 쏟아내면 호남의 새 맹주를 자처하는 국민의당이 이를 맞받아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야권의 해묵은 과제인 ‘선명성’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측면도 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야권 공조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데 두 야당이 서로 ‘제 살 깎아먹기’식 막말 경쟁을 펼치는 것은 현 국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추 대표도 그렇지만 그걸 고스란히 받아치는 박 위원장 역시 격이 떨어지는 대응임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할수록 두 야당의 ‘호남 쟁탈전’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야권 내부에서 과격한 언사를 동반한 불필요한 공방을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소모적인 ‘힘겨루기’가 반복되면 야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울 뿐”이라며 “그 과정에서 여권을 향해 ‘부역자’ ‘구걸’ 등 격한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글=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