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훈의 컬처 토크] 길가에서 다시 시작하다

입력 2016-11-25 21:31

밥 말리는 레게음악을 전 세계에 알린 위대한 아티스트이며, 그의 조국 자메이카 민중을 위한 사회활동가였다. 그는 흑인들의 자긍심과 해방을 노래했을 뿐 아니라, 평화와 사랑, 평등과 희망의 인류 보편적 인권 정신을 노래에 담아냈다. 밥 말리의 대표곡은 “No Woman, No Cry”(안 돼요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이다. 여기에서 여인은 밥 말리의 조국 자메이카를 의미한다.

이 노래는 밥 말리가 성장기를 보낸 자메이카의 수도 트렌치타운(Trenchtown)에 사는 빈민들의 삶과 정치적 ‘위선자’들에 대한 투쟁을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위선자들은 국민들의 곤궁한 삶을 망각한 채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기는 당시 위정자들을 의미한다. 밥 말리와 그의 친구들은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이들에 저항한다. 그 과정에 그는 같은 뜻을 나누는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과 소박한 나눔을 멋지게 표현한다. 특히 2절 가사는 이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정부 청사 앞뜰에 모여 위선자들을 지켜보았죠. 그 때 조지는 불을 붙였고, 통나무는 밤새 타올랐어요. 우리는 옥수수죽을 만들었어요. 바로 나와 당신이 함께 나눌 양식이죠. 내가 가진 것은 오직 두 발 뿐이지만, 나는 이 두 발로 계속 전진할거예요. 그러니 눈물을 거두어요. 모든 것은 다 잘 될 거예요!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밥 말리는 우리가 물질적 풍요 가운데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함께 나누는 코이노니아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다. 밥 말리의 노래는 결코 비판과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 흥겨운 레게리듬을 타며 청중들과 부르는 후렴구는 현재의 고통을 넘어 위대한 희망의 동력과 기쁨을 회복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다 잘 될거야” 이것은 그저 막연한 자기최면이 아니다. 이 희망의 구호는 현실적 실천과 투쟁으로 이어졌고, 공동체적 공존과 희망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런 정치적·종교적 위선자들이 늘 존재한다. 예레미야는 온갖 악행을 자행하며 종교적인 위선에 빠져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거짓에 “속지 말라”고 외쳤다.(렘 7:1∼11) 모든 죄인들을 포용하셨던 예수께서도 유독 위선적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며 독설을 날리신다.

현 시국을 맞아 유명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길가에 버려지다”란 노래가 무료로 공개되어 화제다. 이 노래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기득권을 위해 버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다. 아울러 현 시국이 장기화되며 생기는 국정의 공백과 혼돈을 불안해한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이번 기회는 그 어떤 정부와 시민단체들도 이루지 못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비리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이번 시국을 맞아 시민들이 보여준 평화적이며 질서 있는 촛불 시위의 모습은 외신들도 감탄하고 놀라워하고 있다. 이 시위가 단지 정치적 위선자들에 대한 저항을 넘어 우리 안에 만연한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대한 반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길 가에 버려진 듯한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이 길가에서 다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윤영훈<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