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빛'(요 8:12)으로 이 땅에 오셨다. 세상의 어둠과 죄악을 모두 물리치고, 영원한 부활의 빛이 되셨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이를 가슴에 품고, 삶으로 빛을 발해야 한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맞아 빛이 있는 삶의 현장을 찾았다. 지금 거리를 뒤덮고 있는 촛불은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는 희망의 빛이다.
교회의 촛불은 우리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 초는 그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빛이다.
■光, 362일 24시간 촛불, 성공회 서울성당
서울 세종대로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는 지난 23일 오후 촛불이 켜져 있었다. 멀리서 본 초는 커다란 어둠을 인 채 미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촛불 뒤편으로 한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예배당에서 만난 유상신 사제는 촛불을 켜두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촛불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로 항상 불을 밝힙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1년 365일 항상 켜져 있는 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고난주간 성금요일에는 촛불이 꺼진다. 빛이신 예수가 생명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한 주일에 다시 불을 밝힌다. 이 사흘을 제외한 362일 동안 매일 24시간 촛불이 켜져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촛불을 통해 예수의 삶을 묵상할 수 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빛으로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촛불을 보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살아낼 것인가 고민할 수 있습니다.” 유 사제의 말이다. 실제 성공회에서는 기도할 때 각자 촛불을 켜는 경우가 많다. 촛불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고 자기 삶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빛의 속성에서 교회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도 찾을 수 있다. “이 촛불을 한번 보세요. 어둠을 물리치지 않습니까?” 그는 촛불을 가리켰다. “그리스도인 한 명 한 명이 예수님의 빛을 간직한 존재라면 우리가 모인 공동체인 교회는 얼마나 커다란 빛이 되겠습니까?” ‘이 시대 교회가 빛을 발하고 있는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혹시 우리 중 한 사람이 죄에 물들어 어둠에 잠식된다 하더라도 다른 빛이 그 어둠을 밝혀줄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빛의 속성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암시도 준다. “저도 촛불 시위에 나갔습니다. 제가 든 촛불을 보면서 당대의 불의에 저항했던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눅 17:21)고 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이 시대, 이곳에 계신다면 촛불을 들지 않았을까요? 그리스도가 빛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불의라는 어둠에 저항해야 합니다.” 마침 주교좌성당은 촛불 시위가 주말마다 열리고 있는 대로 바로 옆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明, 세상 밝히는 고촌교회 ‘기다림 초’
한 뼘 정도 돼 보이는 보라색 양초 4개가 전시관 안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관리인은 그중 하나의 양초에 불을 붙였다. 불빛이 전시관 안에 있는 수많은 십자가를 비췄다.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다른 양초들도 차례차례 불을 밝히게 될 것이다.
지난 23일 경기도 김포 고촌교회(박정훈 목사)의 십자가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2017 대림절 ‘기다림’ 전시회 현장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송병구(의왕 색동교회) 목사는 “매주 하나씩 초에 불을 켜면 초가 줄어들면서 높낮이가 생기는데 그걸 보며 많은 크리스천이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어둡다, 등불을 켜라’이다. 송 목사는 “대림절은 ‘겨울철의 사순절’이라고 불리는데 어둠은 단순히 겨울이라는 계절적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같이 어두운 시국에 이 사회를 밝히자는 의미로 이 주제를 정했다”고 전했다.
유럽에선 대림절 기간 동안 초를 밝히는 게 오랜 전통이다. 그들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초 앞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한다. 1842년 독일의 요한 비헤른(1808∼1881) 목사가 고아원 아이들에게 성탄의 의미를 전하며 초를 켜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송 목사는 1994년부터 8년간 독일에서 목회할 때 현지인들이 대림절 초를 밝히는 모습을 보고 국내에 보급할 생각을 했다.
송 목사는 “사순절을 잘 보내야 부활절의 감격을 느낄 수 있듯 성탄절 역시 마찬가지”라며 “‘기다림 초’를 밝히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참뜻을 묵상하다 보면 성탄의 본질적 의미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다림 초는 초 4개를 작은 화환이 보듬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네 개의 초는 예언의 초, 베들레헴의 초, 목자의 초, 천사의 초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송 목사는 2010년부터 매년 ‘기다림 초’ 보급 운동을 벌이고 있다. 송 목사는 “우리는 성탄절 전야와 당일만 떠들썩했지 성탄에 대한 기다림의 과정이 없었다”며 “불빛을 통해 가난한 이웃이 보이고, 사회의 그늘이 보이고, 우리 시대의 구유가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26일까지 고촌교회 십자가 갤러리에서, 27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는 경기도 과천소망교회(장현승 목사)에서, 4∼10일 서울 서초교회(김석년 목사), 11∼17일 전농감리교회(이광섭 목사)에서 각각 개최된다. 전시회엔 김향렬 작가의 기다림 초 그릇과 이하루 작가의 새해 캘리그래피 달력, 노은서 작가의 ‘예수님의 선물’, 이승은 허헌선의 ‘천인형’도 함께 전시된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愛, 소외 받은 이웃들 품는 ‘촛불교회’
소설(小雪) 한파가 급습한 지난 22일 최헌국(53) 목사는 변함없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최근 몇 주간 토요일마다 촛불이 광화문을 밝히기 훨씬 전부터 그는 촛불을 들었다. 이날 세월호 천막카페에서 만난 최 목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이후 권력층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있고, 대통령 퇴진 요구도 거세지고 있지만 정작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2014년부터 세월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참여하는 등 꾸준히 희생자 가족 곁을 지키고 있다. 그는 일명 거리교회인 ‘촛불교회’의 목사다. 촛불교회는 익히 알려진 고난의 현장을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2009년 2월 26일 용산참사 현장을 시작으로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재능교육 노동자 쟁의 현장,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 곁까지.
촛불교회는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이란 이름으로 시작했으며 2013년 아예 촛불교회로 이름을 바꿨고, 매주 목요일 거리에서 예배를 드린다. 평균 30∼40명이 참석한다. 현장을 찾아가면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촛불을 켠다. “집회나 시위가 아닌 예배를 드리는 것이기에 경찰도 제지하지는 않더군요. 상처 입은 분들께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최 목사는 현장에서 전개된 단식에도 100일 이상 ‘금식기도’로 동참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9일, 쌍용차 해고자를 위해 13일, 용산참사 가족을 위해 23일 등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져 미루고 미루던 안식년을 지난 3월부터 갖고 있다. 4월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걷고 걸으며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어요.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고 제가 어떤 사역을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요. 물음 끝에 답을 얻었습니다.”
그는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대림절이 시작되는데,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는 그분이 2000년 전에 오셔서 주신 복음의 말씀에 의지해 이웃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식년은 내년 2월까지이지만 최 목사는 ‘박근혜 퇴진 기독교 운동본부’ 등에 참여하며 다시 광장에 섰다. 그는 “촛불교회 등 사역을 다음세대에 잘 이양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촛불을 켤 것”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대전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 예수살기운동 등에 참여해 기독교 사회운동에 힘써왔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어둠의 시대 교회는 빛을 밝히는가
입력 2016-11-25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