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최 수석이 22일 김 장관과 자신의 사직서를 박 대통령에게 제출한 지 사흘째다. 사의를 표명한 법무부 장관이 검찰 사무를 지휘·감독하고, 민정수석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정상 국정이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하지도 반려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상황이 며칠 더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결정이 늦어지는 건 그만큼 고심이 깊다는 의미다. 현재로선 반려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사표 반려를 정식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司正) 업무 핵심 축인 두 사람의 이탈이 현실화되면 정권 붕괴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후임자 인선도 쉽지 않다. 유영하 대통령 변호인이 있지만 야당 추천 특별검사가 주도하는 수사에 대비하려면 검찰 최고 ‘특수통’으로 불린 최 수석의 전략적 조언이 절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사표를 손에 쥔 채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검찰에 보내는 무언의 압박’ ‘두 사람의 사퇴 결심이 확고해 설득이 안 되고 있다’는 등의 해석이 쏟아졌다.
청와대는 이날도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김 장관과 최 수석은 검찰 수사와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느껴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항명이나 내부 갈등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야권은 사표 처리가 늦어지는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행여나 김수남 검찰총장이 나가야 한다는 게 청와대 뜻이라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또 하나 추가된다”고 경고했다. 청와대 내부는 뒤숭숭하다. 최 수석이 더 이상 대통령을 두둔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거나 유 변호인과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박 대통령을 향한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검찰은 대면조사를 밀어붙이고 있고, 야3당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9일까지 탄핵 소추를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도 정작 청와대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달 들어 비서실장 주재로 매일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수습책은 나오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는 개점휴업 상태”라고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특검 후보 추천 의뢰서를 재가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요청했다. 지난 22일 시행된 ‘최순실 특검법’은 국회의장이 대통령에게 특검 임명을 요청하면, 대통령이 야당에 특검 후보 추천을 의뢰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의 추천 의뢰서가 국회에 접수되면 야당은 5일 이내 특검 후보자 2명을 추천하고 박 대통령은 3일 내에 이 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해야 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사표 낸 사람이 검찰 지휘하고 대통령 보좌
입력 2016-11-24 18:07 수정 2016-11-24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