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연탄 가격이 올라 ‘금탄’이 됐어요. 시국은 어지럽고 서민은 더 춥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모아 따뜻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노원구 연탄은행 사무실에서 지난 20일 만난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는 “요즘 백사마을 노인들 중에는 ‘우리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백사마을은 중계동 산 104번지에 위치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다. 1000여 가구 중 600여 가구는 아직도 연탄을 이용한다. 요즘은 아무리 영세한 지역도 도시가스가 연결된다. 왜 백사마을만 ‘다른 세상’일까. 허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국가 시책으로 연탄보일러를 모두 도시가스를 바꿔준다 칩시다. 그렇다 한들 주민들은 2∼3배 비싼 가스비를 충당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고 다수가 생활보호 대상자입니다. 파지를 주워 하루하루 살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백사마을 주민들과 같은 에너지 빈곤층은 전국적으로 10만 가구로 추산된다. 경기가 크게 호전되지 않는 한 이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는 게 허 목사의 얘기다. 도시가스 한 번 쓰지 못하고 연탄만 때는 가정이 대물림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허 목사는 “하루하루 추워지고 있는데 연탄 가격마저 크게 올랐다”며 “고지대인 경우는 배달료를 포함하면 장당 700원 이상 줘야 한다. 사회적 관심과 한국교회의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31곳에 지회를 둔 연탄은행은 소외계층에 연탄을 지원하고, 후원과 봉사를 원하는 기업이나 단체를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연탄 사용 가구 현황 조사도 실시한다. 조사 결과는 정부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다.
허 목사는 1998년 노숙자와 홀몸노인 등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봉사단체인 밥상공동체를 강원도 원주에 설립해 ‘1000원 모으기 운동’을 펼치며 활동했다. 하루 4∼5시간만 자면서 밤 1시까지 아파트 문을 두드리며 후원활동을 했다.
연탄은행을 설립한 것은 대형교회 옆에 살던 한 80대 노인이 연탄이 없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다. 그때가 2002년, 연탄 한 장에 250원 하던 시절이었다. 허 목사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입김이 술술 나는 얼음장 같은 방에 어르신 혼자 이불을 겹겹이 두르고 계시더라구요.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를 계기로 원주의 연탄 사용 가구를 조사했더니 600가구가 넘었다. 마침 한 독지가가 연탄 1000장을 후원했다. 사무실 옆에 3.3㎡(1평) 되는 자리를 얻어 급하게 1000장을 들여놓고 배달을 시작했다.
허 목사는 연탄을 성경에 등장하는 ‘역청’에 비유했다. 역청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발라 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한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안팎을 역청으로 칠했다. 허 목사는 “역청은 석유에서 파생된 자연물로 연탄과 성질이 비슷하다”며 “역청이 구원 방주를 보호했던 소재였던 것처럼 연탄도 우리 이웃을 보호하니 겨울을 나는 방주와 같다”고 설명했다.
연탄은 사용 후엔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환경을 해친다는 인식이 많지만 허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연탄 재는 폭설과 강추위로 빙판이 된 도로나 길에 뿌리면 저렴한 친환경 제설재로 변합니다. 연탄은 무엇보다 불타면서 이웃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봉사에 참여하면 땀도 흘리고 건강에도 좋구요. 600원 후원으로 얻는 기쁨이 크지요.”
■어떻게 돕나… 한 장에 600원짜리 300만장 목표… 연탄 후원·봉사로 참여
국내에서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 가구는 총 16만7000가구다. 이 중 10만 가구는 연탄 지원을 필요로 하는 '에너지 빈곤층'이다. 연탄 사용 가구는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연탄을 땐다. 보일러 1대 당 하루 서너 장이 소요된다. 이렇게 월 150장씩 6∼7개월을 사용하면 1000장이 넘게 필요하다. 올해 연탄가격은 500원에서 573원으로 인상됐다. 연탄 사용 가구들 상당수가 절대빈곤층이어서 더 춥고 힘겨운 겨울을 지내야할 형편이다.
연탄은행과 국민일보는 이들을 돕기 위해 300만장을 목표로 '따뜻한 대한민국 만들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혹한기 추위와 싸워야 하는 이웃들에게 '사랑의 연탄'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소망을 갖고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600원짜리 연탄 한 장이면 따뜻하게 방을 덥히고 밥도 짓고 물을 데워 빨래도 할 수 있다.
참여방법은 연탄을 후원하거나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개인은 연탄 한 장 값인 600원부터 후원할 수 있다. 교회에서 참여할 경우 100장(6만원)부터 후원할 수 있다. 연탄가스배출기 교체를 후원할 경우, 한 가정 당 5만원, 연탄보일러 교체를 후원할 경우 한 가정 당 20만원이면 가능하다.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할 수 있다. 단 적어도 봉사 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 연탄 투입 시점 등 지원 여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탄은행은 정부 지원 없이 순수 후원으로만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동참이 큰 힘이 된다(1577-9044·babsang.or.kr).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연탄은 방주 보호했던 ‘역청’… 추위에 떠는 10만 이웃에 온기를”
입력 2016-11-24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