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택… ‘연습생 세터’ 강민웅 펄펄 날다

입력 2016-11-25 00:07
한국전력 세터 강민웅이 지난 5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남자부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팀 공격이 성공하자 두 팔을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KOVO 제공
남자 프로배구 한국전력의 신영철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세터 강민웅(31)에게 “세트 부문 1위나 2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웅은 속으로 웃었다. “믿지 않았죠. 제가 어떻게 쟁쟁한 세터들을 제치고 세트 선두권을 넘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신 감독님의 예언이 들어맞고 있어요. 저도 놀라워요.” 강민웅은 24일 현재 세트당 평균 12.119개의 세트를 성공시켜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만년 무명이었던 강민웅이 이번 시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국전력은 2라운드에서 4연승을 달리며 7승3패(승점 19)를 기록, 2위로 도약했다. 신 감독은 강민웅이 일등공신이라고 했다. 강민웅은 안산 본오중 1학년 때 배구부 감독의 권유로 배구를 시작했다. 감독은 세트 훈련만 시켰다. 호쾌한 스파이크를 날리는 공격수가 되고 싶었던 강민웅은 실망했다. 하지만 점차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세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강민웅은 2007-2008 시즌 수련선수(연습생)로 삼성화재에 입단했다.

강민웅은 연습생 시절 당시 “(주전이 못 돼)속이 많이 상했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저를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장을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삼성화재에서 유광우의 백업으로 뛰던 강민웅은 2014년 1월 대한항공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한선수라는 걸출한 세터가 버티고 있었다. 강민웅은 또 백업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신영철 감독님이 절 불러 주셨어요. 제 인생이 달라진 사건이었죠”

지난 시즌 세터의 부진으로 고민이 많았던 신 감독은 시즌 도중 최석기와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대한항공에 양보하는 대신 강민웅과 전진용을 데려왔다. 신 감독은 강민웅을 주전 세터로 쓰기 위해 많이 혼내며 가르쳤다. 또 멘탈이 약한 강민웅에게 “도망갈 곳은 없다. 자신을 믿으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강민웅은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 중 평정심을 잃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강민웅은 “요즘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잠들기 전과 경기 전 명상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민웅은 요즘 코트에 서는 것이 즐겁다. 8년 열애 끝에 2014년 5월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 유이안씨의 응원도 큰 힘이 된다. “대한항공 시절 제가 경기에 못 나서니까 아내가 속을 많이 끓였습니다. 이제 제가 주전으로 출전하니 아내가 아주 좋아해요. 아내의 응원 소리를 들으면 기운이 불끈 납니다. 하하.”

신 감독은 “강민웅이 1라운드 때보다 더 좋아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강민웅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토스 컨트롤이 더 정확해야 하고, 이단 토스도 더 가다듬어야 한다”고 몸을 낮췄다.

이번 시즌 강민웅에겐 두 가지 꿈이 있다. 우선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시즌 끝까지 세트 1위를 유지하고 싶어요. 욕심을 낸다고 세트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건 압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받을 수도 있겠죠.” 무명의 긴 터널을 지난 강민웅의 두 번째 꿈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