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고통을 견디는 능력

입력 2016-11-24 19:04

가벼운 감기는 약을 먹지 않고 사흘쯤 버티곤 했다. 다 옛날 일이다. 며칠 전 몸이 무겁고 목이 아픈 기미가 보이자마자 얼른 병원에 가서 이런 저런 약을 처방받았다. 꼭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쌓여 있었기 때문. 그러나 감기약은 어차피 증상을 완화해주는 것일 뿐, 치료제는 아니라서 앓을 만큼 앓아야 떨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약 먹고 나면 통증이 덜하지만, 증상은 며칠 내내 지속되고 있다. 밤이 되면 근육통이 심해져 한밤중에 일어나 진통제를 먹는다. 이런 약이 없던 시절에는 이 지독한 통증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혼미한 정신으로 궁금해 하곤 한다.

약이라고는 없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병에 걸렸을 때 썼던 민간요법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맨눈으로 태양을 잠깐 쳐다보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꺼풀에 보이는 색깔이 노란색이면 노란색 꽃이 피는 약초를, 빨간색이 보이면 빨간색 꽃이 피는 약초를 썼다고 한다. 태양 숭배 사상에서 나온 일종의 동종요법이었을 것이다. 약초 안에 유효한 화학적 성분이 있었다고 한들 극소량이었을 테니, 심리적 위안을 구하는 주술 같은 행위에 불과하겠지만, 그 방법이 서정적이어서 못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약 없이 통증을 견디는 일을 생각할 때마다 이반 일리치를 떠올린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를 썼으며, 현대의 병원 치료와 질병이라는 개념에 회의적 입장을 취했던 철학자다. 그는 죽음에 이르기 전 몇 년 동안 얼굴에 자라난 커다란 종양을 방치한 채 지냈다. 어떤 검사도 치료도 받지 않았고 약도 쓰지 않았다. 다만 고통이 극심할 때면 중독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아편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원래 사람에게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있는데 현대의 의료체제가 그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진통제 없이 살았던 시대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반 일리치의 말이 아주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한밤중에 약을 꺼내 먹을 때마다 나의 ‘고통을 견디는 능력’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글=부희령 (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