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영화 ‘가려진 시간’은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엄태화(35) 감독의 그 따스한 시선은 어린 시절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다.
판타지 멜로를 표방한 영화는 열세 살 동갑내기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친구들과 함께 실종됐다 며칠 만에 홀로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을 수린(신은수)만이 유일하게 알아봐준다. ‘시간이 멈춘 세계에 갇혀있었다’는 그의 말을 기꺼이 믿어준 것이다.
“누구를 믿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믿음보다는 의심이 더 익숙하죠. 뉴스를 봐도 ‘음모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니까…. 그런 현실에 대한 반발심 혹은 제 희망사항일 거예요. 희망적인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표출된 것 같아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엄 감독은 ‘가려진 시간’에 담아낸 생각들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는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상황을 배경으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하는 외로운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무맹랑한 설정이지만 관객에게는 현실적으로 다가가야 했기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멈춰진 세계를 구현하는 게 특히 중요했죠. 중력이 없어진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 공간 안에서 처음엔 재미있어 하던 아이들이 점점 공포에 질리게 되는데, 그 과정을 관객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비롭고 감각적인 화면을 완성해낸 엄 감독은 홍익대 광고디자인과 출신이다. 대학 시절 영화 미술팀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박찬욱 감독의 ‘쓰리몬스터’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단편 ‘숲’(2012)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장편 ‘잉투기’(2013)로 영화계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가려진 시간’은 그가 내놓은 첫 상업영화다. 배우 강동원이 합류해 힘을 얻었다. “돈을 받으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게 신나는 일인 것 같아요. 다른 알바를 안 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행복하네요(웃음).”
평소 겪은 것들을 일기 쓰듯 작품에 담아낸다는 엄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충격이 ‘가려진 시간’ 시나리오 집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극 중 사라진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엔딩 삽입곡 ‘바다가 된 너’도 그가 직접 작사했다. ‘너는 바다가 되어/ 조용한 파도로 내게’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답답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로 전한 엄 감독의 진심어린 소망이다.
덧붙여, 영화 ‘밀정’으로 주목받은 배우 엄태구는 그의 친동생이다. 엄 감독의 작품 3편에 모두 출연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엄태화 감독, 가려진 시간 속에서 희망을 바라며 [인터뷰]
입력 2016-11-25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