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300만 촛불집회 땐 세계사에서 미증유 사건” 서울대 민주화교수協 시국토론회

입력 2016-11-23 18:24 수정 2016-11-23 21:26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벼랑 끝의 한국, 위기 극복의 길을 찾는다’는 주제의 시국토론회에서 교수·학생들이 국정농단 사태로 빚어진 혼란상을 진단하고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송주명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김상연 서울대 사회학과 학생(왼쪽부터) 등이 참석했다. 이병주 기자

한국사회 지성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대에 모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논의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다른 토론자들은 26일 집회가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 탄핵 국면이 시작되면 촛불집회의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내놓기도 했지만, 이번 사태를 선거제도 개혁과 법률 정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2층 영원홀에서 시국 대토론회 ‘벼랑 끝의 한국, 위기 극복의 길을 찾는다’를 23일 개최했다. 학자와 시민단체 대표, 학생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공수처 있었다면 최순실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을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다음 정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검찰 개혁을 강력히 요구했다.

조 교수는 검찰 개혁의 3요소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검사장 직선제, 검찰 수사권 조정을 꼽았다. 그는 특히 공수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공수처와 검찰의 결정적 차이는 인사에 있다”며 “국회가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을 임명하면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노무현정부에서 공수처가 만들어졌다면 박근혜정권 초기에 최순실이 벌써 날아갔을 것”이라고도 했다.

조 교수는 검찰 인사권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검사들은) 인사권으로 통제되는데 검사, 검사장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하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한다”며 정권이 인사권으로 검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검사장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면 당연히 검찰은 국민을 위해 칼을 휘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 약해진다 VS 강해진다

송주명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는 “향후 특별검사제도(특검)와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범죄행위가 분명해질 것”이라면서도 “박 대통령의 자발적 퇴진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 결과 결국 보수세력 내 분열과 보수 주도의 탄핵 시나리오도 예상된다고 했다.

송 교수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가 “평화적으로, 그러나 가능한 총력으로 반드시 퇴진시키겠다는 결의가 강하다”고 진단하면서도 “특검·국정조사 국면에서 대중들의 자발적 동력은 일시적으로 강화될 것이지만 탄핵 국면이 본격화된다면 그 흐름은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전망은 달랐다. 최 교수는 오는 26일 촛불집회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집회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국민이 (전국적으로 300만명이 모이는 수준으로) 폭발한다면 우리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6일 집회는 “양질전화(量質轉化)를 통해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일한 학생 토론자로 참석한 서울대 사회학과 김상연씨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학생운동의 정치적 가능성을 또 한 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을 신호탄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돌이킬 수 없는 정국의 블랙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학생들은 동맹휴업을 통해 학업이라는 대학의 기초적인 기능을 정지시키고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개혁·법률 개정 필요

한국사회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자는 제언도 있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사태로)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졌고, 정치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올라올 것”이라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 갖는 비례대표제가 결합한 형태여서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현 선거제도가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고, 대표성도 확보하지 못하는 정치구조를 만든다”며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일치하는 선거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1987년 탄생한 현행 헌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각의 목소리를 비판하며 “헌법 때문에 발생한 사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에 아무리 그럴듯한 얘기가 있어도 법률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선거를 아무리 해도 민주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민권 규범이나 권리를 현실화화는 방식으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고 헌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건 다른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국면 전환용 개헌 주장의 순수성이 의심된다고 꼬집은 것이다.

글=윤성민 임주언 기자 woody@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