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3일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반 사의를 표명한 초유의 상황에서도 동요 없이 집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 탄핵 의결은 초읽기에 들어갔고 검찰의 대면수사 압박이 조여오는 상황이다. 사정라인마저 흔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청와대 문을 걸어 잠근 채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안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며 “상황 인식이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가 되면 국회가 탄핵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주말 촛불집회를 지나 다음 주 초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면 야당도 더 이상 탄핵 추진을 머뭇거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박 대통령의 감정 상태가 단순 ‘억울함’에서 ‘분노’로 바뀌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영하 변호사가 대통령 변호인으로 선임되고, 이후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게 결정적 계기로 꼽힌다. 대통령 변호인에 친박(친박근혜)계 중에서도 진박(진실한 친박)인 유 변호사가 임명된 순간 검찰과의 관계도 끝났다는 말이 많았다. 유 변호인은 첫 일성으로 검찰 조사 연기를 공식 요청하더니 아예 응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여권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화됐을 때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며 “유 변호인이 대통령을 만나 ‘검찰 수사는 편향됐고 법리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보고한 뒤로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사태 초반 두 차례 대국민 사과와 국회 추천 총리 임명 등 나름의 수습책을 제시했지만 다시 특유의 정면 대응 스타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발언들도 하나둘 새어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 최순실씨의 각종 비리 내용을 보고받고 “내 앞에선 조용히만 있어서 그런 일을 했는지 몰랐는데 국민들이 싫어할 일은 다 하고 다녔다”고 분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명예로운 퇴진을 고려해보라’고 조언한 원로 인사에게 되물었다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라는 말은 청와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이 특별검사 임명을 거부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최순실 특검법’에 야당이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게 돼 있다”면서 “특검 임명 거부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내부 기류는 다르다. 한 관계자는 “야당이 터무니없는 인사를 특검 후보로 추천하면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한 말을 뒤집은 전례가 있어 특검 수사도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문 걸어 잠근 靑… 朴의 감정, 억울함서 분노로
입력 2016-11-24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