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의 대응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동시에 사표를 내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검찰 수사에 정면으로 반발했던 박 대통령이 벼랑 가까이로 몰린 셈이다. 사정(司正) 라인의 두 축이 사의를 밝히면서 정권 내부 붕괴가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23일 “청와대가 진짜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됐다”고 토로했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 수사를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비판한 것을 빗댄 것이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청와대 시스템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빠졌다.
이번 사태는 ‘한국판 토요일밤의 대학살’에 비견된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토요일이던 1973년 10월 20일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 해임을 지시하자 법무장관과 법무차관이 이를 거부하고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던 사건을 일컫는다.
특히 최 수석의 사표 제출에 청와대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변론 과정에서 당대 최고의 특수검사라는 평가를 받는 최 수석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사표 제출 소식에 청와대가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사정 라인 두 축의 동시 사표에 대해 반격을 고려 중인 박 대통령에게 항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내부 붕괴설이나 박 대통령과 최 수석 간 갈등설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변수는 박 대통령의 사표 수리 여부다. 특별검사 수사를 앞두고 있어 박 대통령이 두 사람의 사표를 바로 수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검찰 수사의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받기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사표가 수리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사의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박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다면 ‘나 홀로’ 특검 수사와 탄핵 정국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의 더 큰 고민은 인물난이다. 탄핵과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이들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을 구하기 쉽지 않다. 인품과 능력을 갖춘 인사들은 고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충성심을 갖춘 친박(친박근혜)계 출신 율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앉힐 경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비판이 우려된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한국판 ‘토요일 밤의 대학살’… 靑, 패닉
입력 2016-11-23 18:17 수정 2016-11-23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