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보좌를 맡은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 내정한 지 23일, 임명장을 수여한 지 4일 만에 이뤄진 일이다.
최 수석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정(司正)을 총괄하면서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필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22일 오후 박 대통령에게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를 전달하면서 본인 사직서도 함께 제출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앞서 21일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직하는 게 도리”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검찰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최 수석이 단순히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표를 냈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검찰 최고의 특수통으로 불렸던 그가 청와대와 ‘친정’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청와대에 사의를 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 수석은 지인들에게 “국가기관의 기본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 상황이 ‘오수부동’(五獸不動·다섯 짐승이 한 곳에 모이면 서로 두려워하고 꺼리어 움직이지 못함)인데 해법이 안 보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검찰 간의 의견대립이 극심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 수석이 임명된 이후 이번 사태를 연착륙시킬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청와대와 검찰이 끝내 극과 극으로 치달았다”며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부정하는 상황까지 오자 더 이상 역할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사안마다 시각차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 변호사는 지난 20일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적시하자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환상의 집” “법정에서 허물어질 사상누각” 등의 표현을 써가며 반발했다. 이런 강경 메시지가 검찰을 자극했고, 결국 대통령과 검찰이 충돌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다른 관계자는 “최 수석이 대통령을 변호할 수 없고 실제로 하지도 않는데 본인이 모든 걸 지휘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는 점을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검찰 및 특별검사 수사와 국회의 탄핵 추진까지 앞둔 박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은 공적 조직에서 믿을 수 있는 최후 보루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김 장관과 최 수석의 사표를 반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데다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결국 대통령이 재신임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물론 이미 신뢰 관계가 깨져 사표가 수리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사의 수용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피의자 방패’ 거부?… 최재경 사의
입력 2016-11-23 18:09 수정 2016-11-24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