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투표에 총리직 건 伊 렌치… 가난한 남부 표심이 관건

입력 2016-11-23 18:30

마테오 렌치(41·사진) 이탈리아 총리는 다음 달 4일로 예정된 개헌 국민투표에 총리직을 걸고 있지만 자리를 못 지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에서 경제가 가장 침체된 지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남부 주민들의 분노가 표심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의 백인들이 몰표를 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남부 지역 상당수 유권자가 개헌의 취지와 상관없이 렌치 총리를 불신임하는 의미로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민심을 전했다.

나폴리에 사는 25세 바텐더 에마누엘 푸스코는 “렌치가 이끄는 중도좌파 민주당 정권은 남부 경제 재건에 실패한 전임 정권과 다를 바 없다”며 “좌파든 우파든 이곳 노동자 계층은 렌치에게 패배를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상원 규모를 대폭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에 찬반을 묻는 것이다. 고비용 정치 시스템을 개편하자는 취지는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야권은 이번 투표를 높은 실업률과 이민자 대량 유입 등 렌치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로 규정했다. 렌치 총리도 부결 시 사퇴할 뜻을 밝혔다.

지난 9월까지 찬성 여론이 약간 앞섰다가 10월부터 역전됐다. 현지 언론이 지난 18일 발표한 최종 여론조사 결과에선 반대가 7∼10% 포인트 우세했다.

국민투표 부결로 렌치 총리가 조기 사퇴하면 2018년 총선이 내년으로 앞당겨진다. 유럽연합(EU) 탈퇴를 추구하는 생태주의 좌파정당 오성운동과 반(反)이민·반EU 성향의 극우정당 북부리그가 집권을 노리고 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