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25·여)씨는 매주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갈 수가 없다.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음식점에서 하는 아르바이트와 시간이 겹치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100만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몰렸을 때도 김씨는 SNS나 뉴스로 짤막한 소식만 들어야 했다. 아르바이트까지 빼가며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신 김씨는 지난 19일 4차 촛불집회부터 유튜브로 집회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집회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모습을 담은 영상은 물론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영상도 있었다. 김씨는 “사정이 있어 집회에 참여하기 힘든 사람들이 유튜브로 모인다”며 “직접 참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렇게라도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에서 온라인 집회방송을 보는 이른바 ‘집방족’이 늘고 있다.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하듯 ‘집방’(집회 방송)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이다.
집방족은 아르바이트생·자영업자이거나 촛불집회가 열리지 않는 지역에 살아 집회 참여가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많다.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집방의 장점으로 꼽는다. 스스로를 “집회 인원에 집계되지 않는 숨은 촛불”이라고도 강조한다.
집방족은 주로 오마이TV, 팩트TV 등 언론사가 유튜브로 방송하는 영상을 본다.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7시쯤 유튜브에서만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집방을 지켜봤다.
오마이TV가 지난 19일 유튜브에 올린 “‘박근혜는 하야하라!’ 4차 범국민행동” 영상은 23일 기준 누적 조회수가 83만회를 넘었다. 12일 ‘3차 범국민행동’은 222만회 이상 재생됐다. 강원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최모(16)양은 “기숙학교라 평소 집회에 나가지 못한다”며 “그래도 친구들과 집회 영상은 꼭 챙겨본다”고 했다.
비교적 형식이 자유로운 개인방송으로도 집방(개인집방)을 본다. 개인집방은 BJ(인터넷방송 진행자)가 시청자와 소통하는 게 특징이다. 아프리카TV 개인방송 진행자 ‘망치부인’ 이경선(47)씨는 4차 촛불집회 때 혼자 8시간 넘게 집방을 진행했다. 최대 동시 접속자는 7000여명으로 평소의 2배가량이었다.
이씨는 “형식이 없는 개인집방에서는 돌발 상황이 종종 벌어지는데 그런 모습을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며 “‘망치부인이 가는 집회는 무섭기보다 외려 재밌고 웃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하이라이트만 추려 볼 수 있다는 점도 집방의 장점이다. 밴드 들국화 보컬 전인권씨가 지난 4차 촛불집회에서 ‘애국가’ ‘걱정말아요 그대’ 등을 열창한 모습을 담은 ‘전인권 풀영상 와 소름’은 누적조회수 110만회를 넘어섰다. 2300개가 넘는 댓글도 달렸다. 직장인 하모(31)씨는 “집회가 6시간 넘게 이어져 매주 가기는 부담스럽다”며 “여유가 없을 땐 가장 반향을 일으킨 장면이라도 찾아본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에서 진행되는 집방에서는 누구나 채팅에 참여할 수 있다. 집회에서 외치는 구호를 따라 적거나 박 대통령이 말했던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등 발언을 패러디한다. 정보공유도 이뤄진다. 집회 현장에서 모금을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해주거나 남은 집회일정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대학생 박모(25·여)씨는 “집회에 참여하면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하게 되지만 집방에서는 서로 반응하며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집회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직장인 안모(28)씨는 “막상 집회에 참여하면 사람들에 가려 본 집회나 자유발언을 보기 힘들 때가 많다”며 “집방으로는 집회의 다양한 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9일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열었던 맞불집회도 집방으로 지켜봤다”며 “박사모와 의견이 많이 엇갈려 직접 집회를 찾기는 부담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세태기획] 현장 못 간 ‘샤이 촛불’ 수백만… ‘먹방’ 대신 ‘집방’ 본다
입력 2016-11-23 18:39 수정 2016-11-23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