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저항가요로 꼽히는 ‘아침이슬’. 하지만 이 곡을 부른 가수 양희은은 그간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곡이 저항의 음악이 될지 몰랐어요. 부른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더군요. 아침이슬을 통해 노래가 가진 무서운 사회성을 실감했어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주말마다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집회에서 불려지는 노래의 레퍼토리도 달라지고 있다. 아침이슬이 그랬듯 가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거나 대중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어떤 노래든 저항가요로 거듭나는 분위기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의 하이라이트는 가수 전인권의 무대였다. 전인권이 2004년 발표한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참가자들은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라는 노랫말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이 곡은 전인권이 이혼을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집회 현장의 젊은층이 애창하는 노래로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2007년 히트곡 ‘다시 만난 세계’를 꼽을 수 있다. 지난 7월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불려진 이 곡은 대학가의 새로운 저항가요로 부상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이라는 가사는 어지러운 시국과 절묘하게 포개진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집회에서 아이돌 노래가 불려지는 걸 이상하게 여겨선 안 된다”며 “아침이슬이 그랬듯 은유적 메시지가 담겼다면 모든 곡은 다양한 형태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다.
촛불집회를 통해 음악이 갖는 힘을 실감했다는 목소리도 많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음악이 집회 참가자들 결속력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2008년 ‘광우병 집회’가 그랬듯 최근 들어 집회·시위는 축제 분위기를 띤 문화제 형식으로 치러질 때가 많다”며 “이런 배경 때문에 집회에서 음악이 갖는 영향력도 더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처 입은 국민들을 위로하려는 음악인들의 노래도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이승환 이효리 전인권이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가, 18일에는 장필순 김광진 한동준 윤도현 등이 참여한 ‘길가에 버려지다 파트 2’가 세상에 나왔다. 음원을 제작한 드림팩토리는 “일부 위정자들, 그의 주변인들에 의해 상처받고 분노한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 용기를 전하고자 같은 뜻을 가진 음악인들이 모여 함께 부른 노래”라고 설명했다.
안치환은 지난 17일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 늙어 숨어사는 것/ 끝이 초라한 것’이라는 노랫말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노래다. 이 곡은 안치환닷컴(anchihwan.com)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걱정 말아요 그대’ ‘다시 만난 세계’… 촛불 집회 중심에 선 대중가요
입력 2016-11-25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