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뒷談] “자괴감 빠지거나 자기비하 안돼” 유일호 부총리, 조직 다잡지만…

입력 2016-11-23 18:11 수정 2016-11-23 21:04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4일 대국민 담화 이후 유행처럼 번진 ‘자괴감’ 키워드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꺼내들었다.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엮이면서 땅에 떨어진 기재부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기강을 다잡으려는 취지다. 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유 부총리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를 연결하는 영상회의 방식으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그간 기재부는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을 해온 것이지 특정정권이나 개인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다”며 “자괴감에 빠지거나 자기 비하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 부총리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를 가져 달라”고도 했다. 견위수명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다는 의미다. 이어 “대내외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며 “이런 때일수록 우리 기재부가 중심을 잡고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경제와 민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두고 유 부총리가 독려에 나섰지만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언론보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졌던 동요하는 기재부 내부 분위기를 부총리가 직접 확인해준 모양새가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 부총리의 발언에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은 그의 현재 처지 때문이라는 뒷말도 들린다. 유 부총리는 지난 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후임 부총리에 내정된 이후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 3주간 ‘경질 대기 중’ 상태에 놓여 있는 유 부총리는 서울에 머무르면서 세종청사에는 발길을 끊었다.

아울러 유 부총리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벤처육성, 서비스산업발전방안, 창조경제 등을 특정인이 좌지우지했다는 오해도 있으나 이런 부분은 소신 있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부총리가 거론한 정책의 상당 부분은 비선실세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예산·법안 통과가 무산되거나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날 회의는 모처럼 기재부 전체 간부가 모였지만 서울과 세종 간 영상으로 진행해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부총리가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것은 지난달 17일 이후 무려 37일 만이다. 후임 부총리 내정 이후 현안을 챙기는 자리가 사실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기재부 확대간부회의는 격주로 부총리 및 차관과 실·국장, 주무과장 등 간부가 모여 현안을 논하는 자리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