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나란히 사표를 제출했다. 초유의 일이다. 법무 영역에서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수석비서관이 동시에 공석이 될 상황을 맞았다. 사표 수리 여부를 떠나 정부 기능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수리할 경우 후임 임명에 난항이 예상되고, 설득해 반려하더라도 수장이 휘청거린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법치국가에서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은 경제, 외교·안보와 함께 3대 축을 이룬다. 경제부총리는 이미 3주째 사실상 공백 상태다. 박 대통령이 지난 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에 내정한 뒤 후속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령탑 부재에 경제정책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축이 흔들리게 됐다.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거부하고 버티는 동안 정부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오고 말았다.
두 사람이 사표를 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법무부는 “김 장관이 지금의 상황에선 사직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21일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청와대가 “인격살인”이라며 검찰권을 부정한 다음날 사표를 제출했다. 자신이 지휘하는 조직과 자신의 임명권자가 충돌한 상황의 책임을 지려 한 것으로 보인다. 최 수석의 사표는 내정된 지 24일, 임명장을 받은 지 5일 만이다. 청와대에선 이 판국에 그가 민정수석을 맡아줘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데 돌연 사퇴를 결정했다. 분명한 것은 불과 닷새 만에 자리를 내놓아야 할 정도로, 대통령과 검찰의 대립에 장관이 직무 수행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정부 상태가 비정상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세 축 가운데 외교·안보는 어떤가. 국방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군사작전하듯 해치웠다. 국가와 국가의 공식 협정인데 비공개로 진행해 사실상 밀실에서 서명했다. 현장을 담으려던 사진기자들은 취재를 거부하는 국방부에 항의표시로 일제히 카메라를 내려놨다. 이 협정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국민과의 소통을 차단한 채 밀어붙이는 건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다. 정부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중심을 잡고 국정을 이어가는 것은 내각의 몫이다. 그 역할이 제대로 이뤄져야 혼란이 최소화된다. 박근혜정부의 내각은 최순실 사태 이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만 바라보고 일해왔음을 말해준다. 모든 업무의 중심에 있던 박 대통령 뒤에는 최순실씨가 있었다. 지금 나타나는 정부의 위기는 비선의 농단이 국정에 얼마나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지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래도 끝까지 버티려는 듯하다. 무너져가는 정부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하루 빨리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하고 과도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사설] 김현웅·최재경 사표, 무너져가는 정부
입력 2016-11-23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