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박·최 게이트’와 공직윤리

입력 2016-11-23 18:58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 1항에 명시된 공무원의 사명이다. 공무원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 즉 공익(公益)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공무원에게는 국민들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 결정 및 집행 권한이 주어져 있다. 그런 만큼 엄격한 도덕성과 공직윤리가 요구되고 위반 시에는 응분의 처벌이 뒤따른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수석(首席)공무원이다. 국가원수이고 정부 수반이라는 막중함 때문에 헌법 제69조에 따라 취임에 즈음해 다음과 같이 선서하고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선서에 대한 도전이자 배신이다. 검찰은 지난주 최순실씨 등을 기소하면서 공소장 여러 곳에 박 대통령과 이들이 범죄를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과 강요, 직무상 비밀누설 등 9가지였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와의 독대 자리를 만들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수십억원의 자금 출연을 강요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너무 어처구니없어 말문이 막힌다.

헌정 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을 지켜보는 것도 참담하지만 대통령의 적반하장 태도에 국민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수사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예정된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객관적 증거를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검찰이 적당하게 수위조절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가 먹혀들지 않자 위기 모면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 같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국정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는데도 제 한 몸 지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도 법 앞에서 예외일 수 없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지만 그게 수사 거부의 방패막이가 될 수는 없다. 국민을 공분케 한 헌정질서 유린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것은 헌정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는 퇴진 요구에는 귀를 막은 채 막무가내로 버티는 대통령의 후안무치한 모습에 국민들은 집단울화병에 걸릴 지경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헌정질서 유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대통령은 그 자리를 유지할 명분도, 자격도 이미 잃었다.

비선 권력에 줄을 대고 그들의 손발이 돼 개인의 영달을 꾀한 공직자들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돼야 한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물론이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공범과 종범(從犯)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있을 때 미르재단 설립 실무회의를 주재한 최상목 현 기획재정부 제1차관 등도 상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지만 공적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진행될 특검 수사와 국정조사에서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어떻게 국가권력을 사유화했고, 그 과정에 누가 부역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관련자들을 엄벌해 국가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