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덤

입력 2016-11-23 21:14

덤, 아름답고 훈훈한 우리말입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말하지요.

이름부터 낯선 혈루증은 피가 그치지 않는 부인병이었습니다. 열두 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으니, 얼굴빛이나 마음이나 삶이 백지장처럼 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을 것입니다. 여인이 어떻게 해서라도 병을 고치려 했던 것은 병을 고치지 않는 한 온전한 삶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혈루증은 부정하게 여겨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친구들과 교제하는 것까지 거부를 당했으니까요. 그래서 여러 의사에게 몸을 보이며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고 상태는 더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남모르는 아픔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꺼내 놓을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알면 버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게 합니다. 자신만의 아픔에 갇혀 ‘들키고 싶은 돌멩이처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은 또 하나의 혈루증 환자일지도 모릅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감히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예수님 주변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인은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하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 같았지요. 그때 정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기 병이 나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으니 말이지요. 그 순간 여인이 느꼈을 전율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는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죽어가고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던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병이 나은 여인에게는 모른 척 지나가면 훨씬 더 좋고 고마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아셨을까요.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이 휘청거릴 만큼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두려워해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여인의 하나하나의 모습 속에는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34)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아 병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인정하신 믿음은 옷자락을 붙잡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실 때 숨지 않고 ‘나아와’ ‘엎드려’ ‘사실대로’ ‘말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옷자락을 붙잡는 것과는 다른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이 절박한 심정으로 원했던 것은 병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몰래 옷자락을 붙잡았을 뿐인데도 병이 나았으니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가장 귀한 것을 얻은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찾는 주님 앞에 엎드려 모든 일을 사실대로 고백하는 순간, 여인은 깨닫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이 예수님 앞에서는 단지 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오늘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도 혹시 덤 아닐까요. 주님께서 주시는 가장 귀한 은총은 구원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아픔이 있었다 해도 얼마든지 새 삶을 살 수 있는 구원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구할 가장 귀한 은총은 덤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한희철 목사 (부천 성지감리교회)

약력=△1959년 경기도 의왕 출생 △감리교신학대 졸업 △'나누면 남습니다(바이북스)' 등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