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기계음이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멤버들은 무대로 걸어 나와 악기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스크린에는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인 영상이 간단없이 이어졌다. 관객 중엔 이런 감상에 젖은 사람도 있을 듯했다. ‘내가 지금 꿈속을 걷고 있는 걸까, 우주의 어디쯤을 유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22일 오후 8시부터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밴드 시규어로스의 공연은 이 밴드의 세계적 명성을 확인케 하는 무대였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 콘서트는 시규어로스가 2013년 5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개최했던 공연 이후 두 번째로 가진 내한공연이었다.
시규어로스는 신곡 ‘오베두르(Ovedur)’를 시작으로 약 1시간30분 동안 내리 12곡을 선보였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거나 공연장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멘트’는 없었다. 묵묵히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할 뿐이었다.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이들의 음악은 명불허전이었다.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조명은 다이내믹했고 영상을 활용한 시각적 효과는 거대한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욘시’로 통하는 욘 소르 비르기손(보컬·기타)은 아름다운 가성으로 공연의 신비감을 더했다. 기타를 바이올린 활로 연주하는 특유의 연주 기법도 자주 선보였다.
시규어로스는 1994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다. 장르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 음악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슬란드어로 된 노래가 많지만 욘시가 직접 만든, 뜻이 명확하지 않은 음절로 구성된 ‘희망어’가 섞인 곡도 적지 않다.
이날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이 퇴장하자 관객 7000여명은 3분 넘게 앙코르를 외쳤다. 앙코르 무대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멤버들은 두 차례나 무대로 걸어 나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공연장을 나올 때 주최측이 콘서트를 앞두고 내걸었던 홍보 문구가 떠올랐다. ‘시규어로스를 모른다면 당신이 부럽다. 이 음악이 당신에게 끼칠 무한한 영향력은 이제 시작일 테니까.’
박지훈 기자
[리뷰-‘시규어로스’] 내가 꿈속을 걸었나? 우주 어디쯤 유영했나?
입력 2016-11-24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