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의 작은 천국 이야기

입력 2016-11-23 21:43 수정 2016-11-24 16:05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 태민이가 여동생 지우의 머리 위에 노란 풀꽃을 조심스레 올려주고 있다. 김선주 목사 제공
물한계곡 마을에 사는 80대 할머니 세 분. 김선주 목사 제공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눅 17:21)." 예수님의 말이다.

20㎞에 달하는 국내 최대 원시림 계곡인 충북 영동 물한계곡 옆에는 하나님 나라를 닮은 작은 교회가 있다. 물한계곡교회. 2011년부터 김선주(50)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김 목사는 매일 아이들과 웃고, 어른들과 일하고, 노인들과 정담을 나눈다. 그가 이곳에서 쓴 이야기 37가지를 '우리들의 작은 천국'이란 책으로 묶었다.

복사꽃이 눈부시던 4월, 김 목사가 태우 삼남매와 복숭아밭에 나가서 논다(80쪽). 남매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다. 복사꽃을 하나씩 딸 때마다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를 한다. 이야기 거리가 바닥났을 때 김 목사가 마지막으로 만든 이야기. “복사꽃은 하늘 나라에 있는 아빠들의 신발이야. 아빠들이 땅에 두고 온 아기들이 보고 싶어서 뛰어가다가 벗겨진 거래.…지금 이 꽃들은 어젯밤에 떨어진 아빠들의 신발이야.” 아이가 핀잔한다. “무슨 신발이 이래요?” 그는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게 꽃처럼 가벼워. 복사꽃이 핀다는 건 아빠들이 아기들을 보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뜻이야”라고 얘기해준다. “그럼 우리 아빠도 달려와요?”라고 아이가 묻는다. 조용조용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 지우가 잠든다.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 같다.

전체 성도 50여명 중 주일학교 학생은 30여명. 이 중 10여명은 40리(약 16㎞)가 넘는 곳에서 매 주일 이 산골 교회로 온다. 아이들 사이에 교회가 재미있다고 소문나서다. 그가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아이들이 그를 부르며 몰려드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 온 줄 알았네.”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개구쟁이’ 목사의 일상은 미소를 부른다.

산골에선 땀 흘릴 일도 많다. 태선이네 자두를 따는 것을 도우러 갔을 때는 적자 보는 농사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253쪽). 폭우 오던 날, 한 성도의 뒤집힌 위성방송 수신기를 바로 세우려 지붕 위에서 칼춤을 춘다. 그러다 “에이○, 증말 힘드네”라고 내뱉곤 바로 회개했다. 평소 성심껏 성도를 돌보는 목회자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짠하다.

성인 신자 다수는 70대 이상이다. 94세와 91세 할머니 두 분과 ‘군대 귀신(막 5:1∼20)’을 주제로 속회예배를 드리는 장면. “에유, 돼지들이 아깝다. 그챠?” “그 많은 돼지들이 다 뒈져버렸응게 주인은 얼마나 속 아프겄어. 아깝지, 암.” 샛길로 빠지는 대화의 꼬리를 잡아가며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아슬아슬한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63쪽).

그러나 말씀의 ‘거룩한 힘’은 두메에서도 선연하다. 심마니 김귀현씨의 이야기. 심마니들은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고 소리친다. 그들이 믿는 산신령에게 하는 제의의 일부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 김씨는 산삼을 발견하면 무릎 꿇고 산신령 대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처음엔 어색해 하던 심마니들도 나중엔 경건한 모습의 그에게 “형님이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또 산삼을 주셨다”고 말한다(128쪽).

이 책 어디를 펴더라도 잠시 깊은 산골의 ‘작은 천국’을 느낄 수 있다. CBS북스의 첫 책이다. 김 목사는 올해 초 교회 전도지에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이 안 맞으면 전화하라’ 등을 담은 ‘목사 사용설명서’(국민일보 온라인판 3월 18일자 참조)로 화제가 됐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