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조준 <18> 후임에 부담주지 않으려 이임식 이튿날 미국으로

입력 2016-11-22 20:44
2015년 10월 경기도 분당 꿈과사랑의교회에서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 소속 목사 안수식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오른쪽). 왼쪽은 WAIC 사무총장 임우성 목사.

‘갈보리교회’란 이름을 지을 때 여러 생각을 했다. 갈보리는 십자가를 의미한다. 희생과 사랑, 생명을 뜻하는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이 정신으로 모인 갈보리교회 공동체는 나의 자랑이요 기쁨이다. 내 생명을 쏟아 목회한 이 교회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앞서 영락교회 목회 시절, 한경직 원로목사님과 나 사이는 부자지간 같았다. 하지만 교인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이 원로목사님 말씀이라고 전하면서 후임 목회자를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은퇴 연령이 가까워오면서 나는 결심했다. ‘은퇴를 하면 아예 멀리 떠나자.’ 이런 생각을 굳힌 뒤 아내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은퇴 준비를 했다.

은퇴 3개월 전, 후임 목회자를 정했다. 이·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이튿날 미국으로 떠났다. 일사천리로 진행됐기에 많은 성도들이 놀랐을 것이다. 자녀는 모두 한국에 있는데 노 목사 부부가 미국으로 거주하기 위해 떠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 대해 교회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다. 2003년 은퇴한 뒤 10년 동안 미국 내 한인교회와 남미 현지인 교회를 두루 다니며 교역자 세미나를 인도했다. 일종의 목회자 재교육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목회자들 중에는 성공한 이들도 있지만 위축된 이들도 많다. 이들을 교회 지도자로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남미의 경우, 근래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현지인 교역자가 너무 부족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회에서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불러 “당신이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세요”라고 하면 목사로 임명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신학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목회할 경우 곁길로 빠질 위험성이 크다. 남미 현지인교회의 현실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지도력개발원은 남미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200여 차례 ‘목회자의 자세와 신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보람된 일이다. 3년 전 귀국해서도 목회자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 세계지도력개발원 세미나실에서는 ‘목회와 말씀선포’를 주제로 매월 둘째·넷째 목요일 오전마다 모여 목회 경험을 나누고 있다. 이런 석상에서 교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부끄럽다. 한국교회가 심각한 영적 위기에 직면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목사의 책임을 절감한다.

목사들이 교회를 기업체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기업의 오너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 아플 때가 많다. 교회마다 갈등과 분쟁이 넘쳐나고 사회법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현실 또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매번 ‘목회 경험’ 모임에 참여하는 젊은 교역자들의 호응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확신한다. 칼뱅의 어록 가운데 ‘교회는 목사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목사의 책임성과 더불어 목회자의 영적 성숙을 강조한 얘기다. 목회자가 영적으로 성숙하면 교회도 함께 성숙해진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목회의 길을 걷는 자는 날마다 성숙해져야 한다.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