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의 말 뒤집기에 ‘황당한 촛불’
입력 2016-11-22 04:01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 시간이 흐를수록 뒤집히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사태 초반 억울함과 진상규명 의지를 강조하던 대통령의 발언은 무고함과 국정 재개 의지를 강조하는 강경한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 민심이 악화될수록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지는 특징도 보인다.
박 대통령은 사태 초반 두 차례 대국민 사과 등을 통해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지난주부터는 돌연 국정 재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정적 장면은 검찰 조사 거부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모든 사태는 저의 잘못이고 그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에 엄정한 사법처리를 주문하며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유영하 대통령 변호인은 20일 검찰이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 3인을 일괄 기소하면서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해 피의자로 입건하자 태도를 바꿨다.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한발 더 나가 ‘차라리 탄핵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유 변호인이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도 했다. 이 발언은 벌써부터 특검 임명과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해석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특검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특검 수사를 조건 없이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국회 추천 총리 문제도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를 전격 방문,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합의 추천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국정 수습을 위한 제스처였다. 물론 야3당이 하루 만에 이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면서 후속 논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청와대는 21일 “야당은 대통령이 제안한 것과 다른 뜻으로 요구하고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정연국 대변인은 “대통령이 총리 권한에 대해 밝힌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퇴진을 전제로 한 총리 추천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공식 확인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내놓은 해명도 검찰 조사 결과 거짓말로 드러난 상황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 지시 및 관여 여부가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첫 대국민 담화 때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문건 유출이 정권 출범 전인 2013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이뤄졌다고 명시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졌던 2014년 12월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라고 한 발언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가 대통령 관련 의혹에 선별 대응하는 모습도 오락가락해 비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