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좋은 변화의 시작] '1+1 후원'… 손주 태어날 때마다 한 명 더 가슴에 품었다

입력 2016-11-22 21:01 수정 2016-11-22 21:06
굿네이버스 후원자인 한기선씨가 지난 17일 화로가 있는 경기도 김포 통나무집에서 해외아동 결연후원에 동참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김포=김보연 인턴기자
굿네이버스 현지 스태프와 함께 후원자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결연아동(사진 위). 결연 후원 아동이 굿네이버스 한국인 간사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국민일보와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는 한국사회에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부, 좋은 변화의 시작' 연말 공동 기획을 전개한다.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떤 사업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즉 똑똑한 기부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굿네이버스 회원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통해 기부단체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전달하고 꾸준한 나눔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제시해본다.

지난 17일 굿네이버스 후원자 한기선(64)씨가 거주하는 경기도 김포 월곶면에 들어서자 통나무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축업을 하는 한씨는 2000년 이곳에 손수 2층짜리 통나무집을 지었다. 통나무집 문을 여니 중절모를 쓴 한씨가 웃으면서 맞았다. “제가 원래 예수님과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한씨에겐 5명의 손주가 있다. 김포 통진에 사는 큰 아들이 둘을 낳았고 경기도 화성에 사는 작은 아들이 셋을 낳았다. 그는 2010년 굿네이버스 후원자가 된 이후 손주 이름으로 모잠비크, 미얀마, 네팔, 베트남, 르완다, 차드의 해외아동 6명을 돕고 있다. 손주 수에 한 명을 추가한 것은 ‘더 많은 손자’를 돕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느 날 굿네이버스의 결연후원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아동 후원을 결심했어요. 그렇게 2명을 신청했고, 그때부터 손주가 태어날 때마다 한 명의 손주를 더 가슴에 품기로 한거죠. 요즘말로 하면 ‘원 플러스 원’ 개념입니다.(웃음)”

그는 나눔의 DNA를 지닌 사람이다. 1976년 이정순(65)씨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으로 찾아간 곳이 충남 온양온천 근처의 보육원이었다. 신혼여행경비 6만원을 아이들에게 써달라며 보육원 원장에게 건넸다. 친지 등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부는 ‘받을 생각하지 말자’며 아낌없이 돈을 건넸다.

한씨는 2002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생면부지의 간질환 환자에게 자신의 간 3분의 2를 떼줬다. 성경 말씀처럼 조금이라도 생기면 나눠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몸은 건강했으니까 ‘간이라도 떼어줘 죽어가는 사람 한 명 살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설득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지요. 며칠을 고민한 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훌륭한 생각을 했다’며 흔쾌히 찬성하는 겁니다. 이건 아내에게 처음 얘기하는 건데, 빈말이라도 아내가 걱정을 해줄 거라 생각했어요(웃음). 좀 섭섭하긴 했습니다. 나눔의 삶을 살아왔던 제 모습을 줄곧 지켜본 자녀들도 반대하지 않더라고요. 보란 듯이 병원에 당당히 가야 하는데 가족들이 그렇게 환영해주니 마치 수술실에 떠밀려 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하하.”

“어머, 그랬어요? 정말 몰랐네요. 남편이 좋은 일 한다고 하길래 찬성한 것뿐인데요. 받는 것보다 줄 때 훨씬 행복하잖아요.” 아내 이씨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한씨의 배엔 ‘ㅅ’자 형태로 30㎝가량의 흉터가 있다. 간 이식수술의 흔적이다. 한씨는 그 상처가 자신을 살린 흉터라고 말했다. “간 이식 수술이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다른 한 사람을 살렸는지 모르지만 제 입장에선 오히려 제가 영적으로 살아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식 수술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다보니 제가 엄청난 교만에 빠졌다는 걸 발견했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간 이식을 내가 했으며, 그 사실조차 말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겸손하다’ ‘대단하다’고 주변에서 알아주길 바랐던 거지요.”

한씨는 자신의 마음속에 은밀히 자리 잡은 내적 교만을 발견하고 절대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간 이식 수술 후 10여년 동안 치열하게 자신과 싸웠다. 한씨는 “내면에 쌓인 내적 교만을 두고 그때 엄청나게 회개했다”며 “내가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을 살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오히려 나를 살린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의 목표는 ‘나눔의 작은 허브’로 살아가는 것이다. 한씨는 “결연 후원아동을 계속 늘려갈 예정이며 손자들과 함께 굿네이버스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꼭 해보고 싶다”면서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작은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와 인터뷰 중에 주변 이웃들로부터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너머로 이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씨, 도토리묵 해놨는데 와서 좀 먹고 가지?” “응, 지금 인터뷰 중인데 다음에 갈게. 미안해. 고마워.”

한씨는 “내 주변에 좋은 이웃이 많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내가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며 “내가 돕고 있는 해외아동 6명도 사실은 뭔가를 주는 수혜 대상이 아닌 나에게 행복을 주는 좋은 이웃이다. 내게 좋은 이웃이 돼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좋은 이웃론(論)’은 하루 종일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김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