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관세·환율 칼 빼든 트럼프… 中과 마찰땐 韓 ‘더블펀치’

입력 2016-11-22 04:01

지난 17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참석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금융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의 기관장과 거시경제·통상·산업 분야 민간 전문가들이었다. 간담회 주제는 ‘미국 대선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이날 간담회는 미국 대선 결과를 바라보는 우리의 걱정과 불안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유 부총리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세부 항목에서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봤다. ‘트럼프노믹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정책)의 실체는 무엇일까. 트럼프노믹스는 ‘무기력증’에 빠진 우리 경제를 더 큰 위기에 빠트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넛 크래커’에 끼인 한국

트럼프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미국과의 무역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고 본다. “중국이 미국을 돼지저금통처럼 활용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 수입시장에서 21.5%(2015년 기준)에 이르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3657억 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를 봤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취임 100일 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45%라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한다.

환율조작국 낙인을 찍는 행위는 중국에 ‘환율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환율조작국에 보복관세 부과,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압박 등 다양한 무역 제재를 가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율 4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3년 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4.8%, 중국의 대미 수출은 87% 감소한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중국, 미국에 기대는 정도가 크다. 2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26.0%, 미국은 13.3%에 이른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70%가량은 중간재다. 중국은 이를 재가공해 미국에 수출한다. 두 나라의 통상관계가 악화되면 우리는 대중 수출, 대미 수출 모두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넛 크래커’(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기계) 사이에 끼인 호두 신세가 되는 것이다.

‘보호무역 폭풍’이 온다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폭풍’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빅2’의 통상마찰, 환율전쟁뿐만이 아니다. ‘잿빛 전망’의 중심에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라는 ‘지뢰밭’이 놓여 있다.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을 얘기한 적이 없다. 다만 선거 유세기간에 한·미 FTA가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를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내고 아시아 수출국 가운데 한국이 트럼프노믹스 충격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은 2.0%로 자체 예측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트럼프노믹스 때문에 1.5%로 추락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한·미 FTA 효과로 우리의 대미 수출은 매년 늘고 있다. 2010년 전체 수출에서 10.7%였던 대미 수출 비중은 지난해 13.3%까지 증가했다. 2010년 이후 미국 수입시장에서 일본과 대만의 점유율이 하락한 반면 우리의 점유율은 2010년 2.55%에서 지난해 3.20%까지 상승했다. 2000년(3.31%) 이후 최고치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계관세, 보복관세 등 무역구제 수단으로 압력을 높이면 우리의 대미 수출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한·미 FTA를 재협상하겠다고 나서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협상으로 양허 정지가 이뤄지면 5년간(2017∼2021년) 수출 손실이 269억 달러, 일자리 손실이 24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수출 손실이 큰 산업은 자동차, 기계, 정보통신기술(ICT), 석유화학, 철강, 가전, 섬유 등으로 우리의 주력 종목이다.

‘트럼프판 뉴딜’은 기회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노믹스가 실물경제에 미칠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선거 공약이 정책으로 형체를 갖추는 과정에서 순화되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세·법인세 감세((減稅), 재정지출 확대,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제조업 경쟁력 강화 등 ‘트럼프판 뉴딜’이 미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결국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전제조건은 한·미 관계가 안보 동맹은 물론 경제 동맹으로 탄탄하게 엮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고 이해시켜 양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우리 정부가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5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미경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신정부는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과 미래산업 육성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고,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협력 기회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대규모 인프라나 에너지 개발, 우주·보건·과학기술 등에서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