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고 허탈하다. 최순실씨는 권력 막후에 숨어 대통령 행세를 하며 국정을 농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와 함께 국가를 사유화했다. 대한민국의 정의와 공정은 처참하게 훼손됐다. 20일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씨 등 3명을 기소하면서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는 그간의 의혹 상당 부분을 사실로 확인시켜줬다. 피의자로 정식 입건된 박 대통령은 공소장에서 형법 제30조의 공동정범(공범)으로 적시됐다. 방조(종범) 차원을 넘어 범죄에 적극 개입했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현직 대통령의 피의자 입건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제적 망신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선 부끄러움이 앞설 따름이다.
헌법 질서는 유린되고 파괴됐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최씨의 이권 개입, 청와대·정부 문건 유출 등 3명의 범죄사실 대부분에 대통령 공모관계가 인정됐다. 권력남용에 따른 전무후무한 국기문란의 몸통이 대통령 자신으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달리 정부 고위직 인선 자료 등이 올 4월까지 최씨에게 유출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통치의 정당성은 물론 도덕적 신뢰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사건 은폐와 거듭된 거짓말은 비참한 결말을 초래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은 또다시 분노한다. 지난 주말에도 10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여권 인사의 망언과 달리 분노의 촛불은 오히려 들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여기에 수사 결과 발표로 성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박 대통령은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 불소추 특권의 예외조항인 내란죄나 외환죄에 버금간다.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의 전모를 국민 앞에 숨김없이 밝혀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변호인은 수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검찰 직접 조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적반하장이다. 검찰의 대면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그나마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면 국격(國格)은 더욱 추락할 뿐이다.
난국은 수습돼야 한다. 정국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된다. 하지만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 되레 ‘탄핵하라’며 맞불을 놓고 있다. 그렇다면 헌법이 부여한 탄핵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이번 수사 결과는 탄핵의 사법적 근거를 마련해줬다.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이 계속 버티면 국민이 나서서 ‘썩은 권력’을 도려내야 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그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로드맵이 필요하다.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들이 이날 ‘비상시국 정치회의’를 열고 탄핵 추진 논의를 국회와 야3당에 요청한 것은 늦었지만 올바른 방향이다. 탄핵 소추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키는 게 급선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여부는 그다음 문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떠나 탄핵을 포함한 구체적 수습 방안을 로드맵에 담아 헌법 제1조 1항의 민주공화국 복원 작업에 나서야 한다. 그게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가득하기를 바라는 촛불민심에 부응하는 길이다.
박정태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tpark@kmib.co.kr
적반하장 대통령 ‘탄핵 가결’로 권한 정지 급선무
입력 2016-11-20 18:05 수정 2016-11-20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