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통령은 공범”… 靑 “검찰수사 거부”

입력 2016-11-20 18:02 수정 2016-11-21 00:53
촛불은 또 의연히 타올랐다. 작은 촛불 수십만 개가 모여 거대한 빛을 만들어 어둠을 물리쳤다.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촛불을 지키고 있다. 이날 광화문광장(60만명)과 부산(10만명) 등 전국 각지(35만명)에서 95만명(주최 측 추산)이 촛불을 들었다. 단 한 명의 연행자도 없는 평화 집회였다. 대통령은 지난주 100만 촛불의 함성에도 귀를 닫았고, 여당 국회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협박 반 냉소 반으로 폄하했지만 국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26일에도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글=임성수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

검찰이 20일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사태의 ‘공범’이자 ‘피의자’로 공식 지목하자 청와대가 검찰 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차라리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헌정 68년 사상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검찰에 의해 피의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 수용 대신 특검과 탄핵 등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처음 거론됐던 대통령 탄핵은 이제 일부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를 제외하곤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야권 대선 주자들이 탄핵 절차 논의를 공식 요구했고,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도 탄핵 절차를 요구했다. 대통령과 정치권, 검찰이 모두 협상과 협의, 수용의 여지가 전혀 없는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다. 국정 공백 및 혼란 속에서 정국은 정면충돌과 파국(破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대한민국 국정농단의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검찰이 결론냈다. 박 대통령은 형사 피고인 공소장에 공범으로 기록된 사상 첫 현직 대통령이 됐다. 검찰 수사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법적 근거가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현직에서 물러나 불소추 특권이 사라지면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범죄 관련성을 전면 부인하면서 ‘차라리 탄핵을 추진하라’는 식의 역공에 나섰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중앙지검장)는 이날 최순실(60)씨와 청와대 안종범(57)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 전 부속비서관을 구속 기소하고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미수) 등의 혐의가, 정 전 비서관의 경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됐다.

이 본부장은 “대통령이 3명의 범죄사실과 상당 부분 공모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불법적 설립과 774억원 강제 모금을 최초 기획했으며, 이후 전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압박·강요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광고기획사를 내세워 100억원대 대기업 광고를 싹쓸이한 혐의, 롯데로부터 70억원을 챙겼다가 돌려준 혐의 등에도 모두 공범으로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최씨 사익 편취의 조력자이자 각종 전횡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현직 대통령 불소추 특권 때문에 기소할 수 없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기소 단계에서 제외한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방침이다. 대기업들이 경영권 승계나 특별사면, 각종 인허가 등에 대한 청탁 대가로 돈을 낸 사실이 입증되면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로 연결될 수 있다.

청와대는 검찰 발표 6시간이 지나 “인격 살인”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수사팀의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객관적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라며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대통령은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는 박탈당한 채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고 인격 살인에 가까운 유죄의 단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헌법상·법률상 대통령의 책임 유무를 명확히 가릴 수 있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하루빨리 이 논란이 매듭지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은 (공소장의)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며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지호일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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