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주범’ 적시… 대통령 바로 겨눈 검

입력 2016-11-20 18:07 수정 2016-11-20 21:21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20일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하며 작성한 공소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에 관여한 내용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은 국가원수라는 독보적 지위를 이용해 기업이 거부하기 어려운 다양한 편의를 ‘요청’했고, 부하 직원들에게는 불법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사실상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판단한 것이다.

우선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박 대통령을 컨트롤타워로 안 전 수석이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 7명과 독대해 재단 설립과 관련한 도움을 직접 요청했다. 이어 안 전 수석에게 전경련과 함께 재단 설립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최씨에게도 “재단 운영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발을 담그는 척하며 사실상 재단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최씨 딸 정유라씨의 친구 부모 회사인 KD코퍼레이션에 대한 현대차의 일감 몰아주기에도 박 대통령이 개입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2014년 10월 최씨를 통해 KD코퍼레이션 관련 사업소개서를 전달받은 박 대통령은 한 달 후 “현대차에서 KD코퍼레이션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다. 안 전 수석은 현대차에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고, 2015년 2월 KD코퍼레이션은 현대차와 납품 계약을 채결한다.

최씨가 소유한 플레이그라운드가 현대차의 70억원 규모 광고를 수주한 구조도 똑같다. 최씨는 회사소개 자료를 작성하고, 박 대통령은 올해 2월 안 전 수석에게 “자료를 현대차 측에 전달하라”고 지시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15∼22일 주요 대기업 8곳과 단독 면담을 한 뒤 안 전 수석에게 “플레이그라운드는 미르재단 일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기업 총수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니 잘 살펴보라”는 취지의 지시도 했다.

박 대통령이 기업 회장들에게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거론하며 지원을 요구하거나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월 박 대통령과 단독 면담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에서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해주면 좋겠다. 더블루케이가 그에 대한 자문에 응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요청을 받았다. 더블루케이는 최씨가 소유한 회사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롯데 신동빈 회장과 단독 면담한 직후 안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이 경기도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진행 상황을 챙겨보라”고도 했다.

이외에도 안 전 수석은 2015년 1월에서 8월 사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이동수라는 홍보 전문가가 있으니 KT에 채용될 수 있도록 KT 회장에게 연락하고, 신혜성도 이동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는다. 두 사람은 이후 각각 광고 발주를 담당하는 전무와 상무보로 채용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정 전 비서관을 통해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더블루케이와 스포츠팀 창단 및 운영 관련 업무대행 용역 계역을 맺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최씨의 부탁을 받는다. 박 대통령은 곧이어 안 전 수석에게 “GKL에서 장애인 스포츠단을 설립하는데 컨설팅할 기업으로 더블루케이를 소개해줘라”는 지시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해 2013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공무상 비밀이 담겨 있는 47건의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한 사실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