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 주제곡 울려 퍼지고 ‘바람 불면 촛불은 옮겨붙는다’ 문구도

입력 2016-11-21 04:42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한 합기도 체육관원들이 ‘박근혜 허수아비는 청와대에서 당장 내려와 논으로 가라’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임주언 기자

4차 촛불집회가 열린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의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했던 가명 ‘길라임’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는 발언 등이 풍자의 표적이 됐다.

광화문광장에는 이날 6년 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제곡 ‘나타나’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박 대통령이 차움의원에서 드라마 여주인공 ‘길라임’을 가명으로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왜 네가 자꾸 나타나…”라는 가사는 에둘러 박 대통령 퇴진을 압박했다. 한 시민은 드라마 배우 현빈이 극중에서 입었던 파란색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광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앞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던 협박 발언도 조롱거리가 됐다. 집회에 나선 한 대학생은 ‘바람이 불면 촛불은 옮겨 붙는다’며 김 의원 발언을 맞받아쳤다. 아예 LED 촛불을 준비한 시민들도 있었다. 대학생 양모(24·여)씨는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을 구입했다”며 “막말보다 풍자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시민은 스마트폰 화면에 ‘촛불’이라고 적거나 플래시를 켜 어둠을 밝히기도 했다.

이색 깃발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장수풍뎅이연구회를 비롯해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범깡총연대, 얼룩말연구회, 거시기산악회(하산해박근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등 깃발이 휘날렸다. 정당이나 노동·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SNS에서 만난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모임인 민주묘총 소속 이모(22·여)씨는 “보수·진보를 떠나 시민으로서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러 나왔다”고 말했다.

경찰 차벽에 스티커를 붙여 풍자에 나서기도 했다. 애초 차벽에는 ‘국민이 행복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함께 만들어요. 4대 악 없는 안전한 세상. 따뜻한 관심으로 성폭력 예방해요. 성폭력 상담·신고 1366’이 적혀 있었지만 스티커가 붙은 뒤 ‘국민이 행복한 박근혜 퇴진이 시작됩니다. 함께 만들어요. 박근혜 없는 안전한 세상. 박근혜 퇴진으로 새누리당 예방해요. 박근혜 상담·신고 1366’으로 탈바꿈했다.

‘봄꽃밥차’가 준비한 ‘박근혜 그만두유’도 지난 12일에 이어 또다시 등장했다. 매니저 김동규(43)씨는 일반 두유에 ‘하야하라’는 스티커를 붙인 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패러디 복장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녹색 외계인 가면을 쓴 시민은 “내가 이러려고 ‘우주의 기운’을 줬나, 자괴감이 든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섰다. 이어 “국민들 기운 빠지게 하지 말고 우주로 가자”며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순시리우스 행성’”이라고 풍자했다. 한 시민은 흰색 블라우스 차림에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얹고 최순실 복장을 따라해 환호를 받았다.

풍자 전단과 간행물도 빠지지 않았다. ‘호외 박근혜 하야 발표’라는 제목의 간행물에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박 대통령 사진이 담겼다. 이 밖에도 ‘닭 잡아야 새벽 온다’ ‘박근혜의 반격을 격퇴하자’ 등이 적힌 전단이 배포됐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사진=임주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