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꼴이 말이 아니어서 눈물”

입력 2016-11-20 18:18 수정 2016-11-20 21:44
시민들이 분노한 건 최순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자유발언대’에 오른 시민들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내비치며 하야를 촉구했다. 그동안 충분한 소통 없이 추진돼온 여러 사안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누구나 3분 동안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할 말이 많았는지 시간 안에 발언을 끝내지 못했다.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수능 시험 끝나고 뉴스를 보는데 나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어서 눈물이 났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박근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국민의 눈과 입과 귀를 틀어막고 생각도 지배하려고 한다. 위안부 합의로 할머니들을 더 아프게도 했다”고 지적하면서 “온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통이 느껴진다”고 외쳤다.

한국외대 4학년 학생은 정유라씨와 장시호씨의 대입 특혜 의혹을 언급하면서 “청소년들이 경쟁 교육에 시달릴 때, 세월호에서 304명이 살려 달라고 외칠 때는 (대통령이) 외면해 왔다”면서 “대통령이 ‘쉬운 해고’를 하겠다고 협박해 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대통령을 해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 비대위 관계자도 발언대에 올라 “단 하루 만에 개성공단이 철수했는데 이 과정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개성공단 종사자 10만명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지지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시민 발언에 앞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의 강찬호 대표도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더 이상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촛불을 비하한 발언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있었다. 고1 학생은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가 꺼지기 전에 두 개를 붙여 ‘들불’을 만들 거다”라고 말해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자유발언을 경청하던 시민들은 오후 5시30분쯤 날이 어둑해지자 촛불을 하나둘씩 밝히기 시작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