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대기업 갈취의 공범이 됐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상황이 됐음을 뜻한다.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씨의 숱한 의혹 중 상당수를 검찰이 사실로 인정해 기소했고, 그 공소장에 기재된 대다수 혐의에 박 대통령을 공모자로 적시했다. 청와대의 사실상 방해로 대통령을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공소장을 쓸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혐의가 명백하다는 반증이 된다. 의혹은 이제 범죄사실이 돼 법정에 보내졌다.
그렇게 한 것은 박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검사들이다. 대통령은 총장부터 말단까지 모든 검사의 임명권을 갖고 있다. 수사 결과를 부정하면 3년9개월간 자신이 지휘해온 공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인데, 박 대통령이 그것을 하고 말았다. 청와대의 반응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검찰이 내놓은 결과를 “상상과 추측의 사상누각” “수사팀의 편향된 주장” “인격살인” 등 거친 말로 매도했다. 특검 조사를 받겠다면서 검찰 조사를 아예 거부했고, 헌법 절차로 매듭짓자며 차라리 탄핵하라는 주문을 공식화했다. 어느 대목에도 국민을 생각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지휘 아래 검찰은 수많은 국민을 법으로 단죄했다. 그 칼이 자신을 향한다고 인격살인이라 하는 건 법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행위다. 검찰 조사 거부로 불과 2주 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어겼고, 혼란과 낭비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탄핵의 길을 너무 쉽게 주장하고 있다.
민심을 거스르는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박 대통령이 숱한 자리에서 직접 했던 말이다.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하기를 마지막으로 권한다. 이제 물러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물러나야 하는’ 사안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공범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검찰은 박 대통령이 형법 30조의 공동정범임을 분명히 밝혔다. 누구에게 시켜서 범행한 교사범이나 누가 시키는 대로 범행한 종범이 아니라 범행의 모의와 실행을 함께한 몸통이라는 뜻이다.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만약 종범이었다면 우리는 최순실의 꼭두각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말이 되기에 그렇다. 박 대통령은 공무상 비밀 47건 등을 최씨에게 유출한 혐의, 대기업에 774억원을 출연토록 강요한 혐의에 모두 공동정범이 됐다. 국가기밀 문건 유출, 이것 하나만으로도 물러나야 한다. ‘정윤회 문건’ 사태에서 박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첩보가 외부로 나간 일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했다. 박 대통령이 유출한 문건에는 장·차관 인선 자료까지 포함돼 있었다. 몇 배 더 심각한 국기문란이고, 그 행위자가 대통령이란 점에서 수습이 가능한 선을 넘었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대기업 출연금을 받아낸 시기는 우리 사회가 김영란법을 준비하던 때와 겹친다. 부정한 청탁을 근절하기 위해 국민 400만명의 밥값을 규제하자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을 독대해 돈을 요구했다. 제3자 뇌물죄가 검토될 만큼 돈과 민원의 거래였다는 의혹이 짙다. 며칠 전 공무원이 1만원짜리 음료를 건네 처벌될 위기에 놓였다. 국민에겐 음료수도 주고받지 말라면서 재벌과 700억원대 뒷거래를 한 대통령, 이것 하나만으로도 물러나야 한다. 박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 대국민 사과의 해명은 검찰 수사로 드러난 사실과 크게 다르다. 최씨에게 받았다는 도움의 수위는 ‘연설과 홍보’를 훨씬 넘어섰고, ‘보좌체계 완비 전까지’라던 기간은 올해 4월에도 문건이 유출됐다는 수사 결과에 거짓이 됐다. 이제 국민은 박 대통령의 말을 믿지 못한다. 희미한 신뢰의 흔적마저 사라졌다. 대통령직에 머물 자격을 잃었다.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민이 끌어내릴 것이다. 이미 전국에 촛불이 켜졌다. 정녕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질 거라 믿는가.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우리 현대사는 일관되게 증명해 왔다. 검찰 수사는 시간적 물리적 제약에 일부만 이뤄졌다. 그것만으로도 탄핵 요건은 충분하지만, 끝내 탄핵의 길을 가게 한다면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씻기 힘든 죄를 짓는다. 그 절차가 초래할 혼란과 낭비될 국력을 무엇으로 보상하겠나. 질서 있는 퇴진의 기회도 오래 열려 있지 않을 것이다.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퇴진 결심이 선다면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행하라. 의혹으로 남아선 안 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국민에게 설명할 마지막 의무가 있다.
[사설] ‘국정농단 공범’ 대통령, 이래도 물러나지 않을 텐가
입력 2016-11-20 17:56 수정 2016-11-20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