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순실 게이트에… 공직사회 복지부동

입력 2016-11-21 04:04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마비 장기화로 공직사회엔 일찌감치 ‘집권 마지막 해’ 분위기가 감돈다. 대통령 임기가 1년 이상 남았음에도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정국을 관망하는 ‘복지부동(伏地不動) 모드’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실제 공직자 중에선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감, 집권세력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허탈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 상태를 호소하는 이가 많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20일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들은 뒤 이달 내내 심한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나야말로 ‘이러려고 공무원을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통령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입장에 큰 실망을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공직사회 내부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자신들이 마련했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가득하다. 비선실세의 손발이 되어 놀아난 것은 아닌지, 국정농단에 기여한 것은 아닌지 등 자괴감이 강하게 밀려온다는 것이다. 세종시 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윗선에서 하향식으로 정책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고는 했는데, 그때는 VIP(대통령)의 관심사안으로만 생각했다”면서 “그게 비선실세의 의중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고 토로했다.

장관들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면서 새 정책을 주도적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마저 공직사회에서 실종되고 있다. 기존에 맡아보던 업무를 관리하는 정도로 안전하게 다음 ‘상사’를 맞겠다는 생각이다.

한 공직자는 “장관이 바뀌고 인사가 나면 그 스타일에 맞춰 정책의 방향성을 다시 잡아야 할 수 있다”면서 “기껏 준비했던 업무가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공무원들이 당장 움직이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공직자는 “비선실세 의혹이 제기됐던 초반에는 ‘그래도 우리가 국정운영의 중심을 잡아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고, 사태가 길어지면서 다음 인사가 어떻게 될지 눈치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이 표류하면서 다음 정부에 조선업 구조조정 등 민감한 사안들을 떠넘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위직 공무원을 지낸 한 인사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정책들이 동력을 잃고 있다”며 “미래가 불투명한 이번 정부 임기 내 이슈들을 매듭짓기보다 일단 넘기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