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출연이었다”… 기업들 ‘피해자’로 규정

입력 2016-11-20 18:13 수정 2016-11-20 21:59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검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 장면이 20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앞 대형 전광판에 생중계되고 있다. 멀리 푸른 기와 건물이 청와대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공범으로 명시해 최순실씨 등 3명을 기소했다. 이병주 기자

검찰이 20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기업들을 뇌물죄 공범이 아니라 강요에 의한 잠정적 피해자로 규정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최순실씨와 청와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 거액의 출연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기업들의 해명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최씨 등에 직접 51억원을 건넨 삼성그룹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해 뇌물죄 적용 여부를 결론내지 않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여러 대기업이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강요로 돈과 각종 이권을 제공했다고 봤다. 우선 전국경제인연합회 53개 회원사가 출연한 774억원은 최씨와 안 전 수석에 의한 강제 출연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과 지난해 7월 단독 면담을 갖고 두 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대기업 총수 9명이 뇌물죄 공범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몇몇 기업에 추가로 제기된 최씨 관련 특혜 의혹들에 대한 검찰의 설명도 같다. 현대차가 최씨 지인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에 11억원 규모의 납품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과 최씨가 소유한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70억원 규모의 광고를 몰아준 부분도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강요 및 직권남용에 따른 것으로 봤다. 현대차 관계자는 “청와대 쪽에서 압박이 있었고, 그 압박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게 맞다”고 털어놨다.

최씨가 주도한 포스코의 광고계열사 포레카 지분강탈 논란, KT 인사 개입 및 광고 몰아주기,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장애인 스포츠단 창단 등에도 같은 논리구조가 적용됐다.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송금했다가 지난 6월 검찰 수사 착수 하루 전날 돌려받은 것도 “롯데 측의 부정한 청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 직권남용·강요의 피해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검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롯데 관계자는 “그동안 (피해자라고) 주장해 왔던 부분이 검찰 수사에서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직 검찰 수사가 끝난 게 아니고, 특검도 남아 있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삼성은 검찰의 추가 수사를 통해 사법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20)씨 지원을 위해 지난해 10월 보낸 35억원의 성격과 관련한 수사 내용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지난 18일 장충기(62)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소환하는 등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35억원이 박 대통령의 3자 뇌물수수 혐의를 판단할 주요 단서로 보고 있다. 삼성이 최씨의 조카 장시호(37)씨에게 16억원을 지원한 부분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삼성에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 의혹에 대한 언급은 부적절하다”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글=노용택 정현수 기자 nyt@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