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겨냥해 검찰이 첫 압수수색을 펼친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언론에 처음으로 보도된 지 93일 만이었다. 시민단체가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시점과 비교해 봐도 28일 만이었다. 검찰은 고발 이후 20여일간 형사부 막내 부서에 이 사건을 맡겼다가 언론의 보도가 거세지자 특별수사팀을 만들었고 급기야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20일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구속 기소 내용은 대부분 언론 지적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창립 회의록이 조작되는 등 석연찮은 출연금 강요 의혹이 있다는 언론 보도는 지난 7월부터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해석도 오래 된 문제의식이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재벌 회장들을 만나 모금했으며, 기업체들은 민원을 해결했다는 의혹은 검찰 수사 초반에 불거져 나왔다.
최씨가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염두에 두고 K스포츠재단의 사업과 관련해 이권을 챙길 목적으로 세웠던 법인인 ‘더블루케이’ ‘비덱스포츠’ ‘더운트’ 등 이름도 언론에서 먼저 소개됐다. 뒤이은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적잖이 빈 공간만 확인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정 전 비서관이 인편과 이메일, 팩스 등 다양한 수단으로 국정 문건을 최씨 측에 유출한 내용 역시 강제수사 이전부터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가 사용하던 ‘narelo’라는 아이디가 최씨 소유 태블릿PC의 문건들 틈에서 발견됐다는 내용, 정 전 비서관이 최씨의 강남 아지트로 두꺼운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들을 들고 나왔다는 증언 등이 오래전 언론에 제시됐다. 차은택(47·구속)씨의 인사전횡 의혹도 마찬가지다.
안 전 수석과 최씨가 현대차를 상대로 “‘케이디코퍼레이션’이 11억원을 납품케 해 달라”고 강요한 혐의 정도가 새롭게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언론의 보도 내용을 따라가기 힘든 국면이었다는 것은 수사가 진행되는 내내 검찰이 토로한 바였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압수수색을 들어가니까 핵심 사무실들은 텅텅 비어 있고, 기자들이 쓰레기통 뒤져 가지고 증거나 찾는다”고 말했다.
언론을 포함한 각계의 증거인멸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씨를 입국 직후 소환하지 않았던 검찰은 국민일보가 최씨 회사 더운트의 설립 및 증거인멸 의혹을 보도한 이후 최씨에게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수사가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불거질 때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검찰은 아무렇게나 수사할 수가 없고 또 아무렇게나 압수수색할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앞으로 검찰이 따질 정유라(20)씨의 이화여대 입시비리 의혹도 언론이 한 차례 짚고 지나간 주제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늑장 수사 착수… 뒷북 압수수색… 언론 의혹제기 확인 수준 그쳐
입력 2016-11-20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