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책 빌려보고 시험공부 하는 곳이 아닌 시민의 힘 키우는 공간으로 재정립돼야”

입력 2016-11-21 04:37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이 지난 9월2~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서울 북 페스티벌'에 참가해 서울도서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도서관 제공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서울 도심 나들이할 때 들러볼 만한 곳을 꼽으라면 서울도서관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이 도서를 비롯해 각종 서적이 즐비하고, 앉아서 책을 읽을만한 공간도 넉넉하다.

서울도서관은 2012년 10월 문을 열었다. 유서 깊은 옛 시청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꾼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문화도시를 향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서울시 대표도서관건립추진반 반장에 이어 초대 관장을 맡아 지난 4년간 서울도서관을 이끌어온 이용훈(57·사진) 관장이 21일 퇴임한다. 민간인 신분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이 관장을 지난 17일 만났다.

“서울 한복판에 도서관을 지은 건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잘한 일이다. 도서관이 서울시의 랜드마크가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야. 세계인들이 와보고 싶어 하는 도서관이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어야 된다.”

그는 소음, 주차공간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도서관이 그 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는 건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는 “도서관이 책 빌려보고 시험공부 하는 곳에서 시민의 힘을 키우는 공간으로 자기 역할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도심으로 나와 시민들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가 내건 ‘책으로 시민의 힘을 키운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거론하면서 “시민들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을 도서관의 비전으로 규정한 것은 의미 있는 전환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4년은 서울도서관이 직접 도서관 정책과 예산을 맡아서 해보는 국내 첫 실험이었다. 서울시 협치 모델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장은 “서울도서관은 일반적인 공공도서관과는 다르다. 대표 도서관”이라며 “그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했다.

서울도서관은 도서관 운영만 하는 곳이 아니다. 서울시에는 교육청과 구청이 운영하는 도서관 180여개를 포함해 1000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다. 서울도서관은 한 해 300억원의 예산을 갖고 서울시내 1000여개 도서관에 대한 정책을 편다. 지역 도서관 전체를 상대로 정책과 예산을 집행하는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지역 대표 도서관’이란 말을 쓴다.

서울도서관은 조직 내에 도서관정책과를 두고 있다. 시청 문화예술과에서 하던 도서관 일을 넘겨받은 것이다. 이 관장은 “도서관 일은 도서관이 제일 잘 안다”며 “지역 대표 도서관을 지정해 거기에 도서관 문제를 맡기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기 중 도서관장회의를 30여 차례 열었고, 서울시내 도서관 직원들 1박2일 워크숍을 해마다 진행했다. 각자 굴러가던 도서관들을 함께 모이도록 연결하고 책 축제 등 새로운 실험을 자극하면서 도서관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도서관에서 한 해 2억원만 책 사는 데 쓸 수 있으면 좋겠다. 2억원이면 1만여권을 살 수 있다. 국내에서 나오는 좋은 책은 웬만큼 다 살 수 있다. 그러면 출판사도 도서관을 믿고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게 되고, 도서관이 그 책들을 지역 서점에서 사면 지역 서점도 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공공도서관의 평균 구매액은 1억원이 채 안 된다.”

사서 출신으로 도서관 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공공도서관이 출판과 서점의 위기 극복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