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수능 끝, 공부의 의미

입력 2016-11-20 17:55

지난 목요일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어김없이 시험장에 늦은 학생을 경찰 오토바이로 태워다주고, 관공서나 기업들이 출근시간을 1시간 늦추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수험생 부모들은 학교 문 앞에서 초등 6년, 중·고등 6년, 그렇게 12년간 쌓은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그렇게 갈고 닦은 실력이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작은 실수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대학이 달라질 수도,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수능의 절대성을 보완하기 위해 논술·구술시험, 수시입학전형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의 모든 교육은 ‘수능’ 그 하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무리 학벌주의에 반대하고,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자고 해도 이 사회 학벌 시스템의 견고함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당장 해결책이 없더라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공부는 왜 하고, 대학은 왜 가는 걸까? 그리고 대학의 역할은 뭐고, 많은 수험생들이 명문대학을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을 통한 자아실현과 세상에 대한 깊고 넓은 안목,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교양과 통찰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우리 현실의 명문대학은 ‘경제적 성공’과 ‘출세보장’이 없다면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막상 대학을 졸업해도 많은 청년들이 원하는 직업을 못 구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그 많은 시간, 비용을 들여 왜 대학에 가려는 것일까.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으려 검찰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불렀을 때 그가 보인 거만한 태도를 보며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대한민국 최고 학부를 나온 수재였던 그가 학벌만능주의 사회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해 최고 위치까지 갔어도 후안무치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공부는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진짜 공부다.

유형진(시인),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