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는 野… ‘셈법’ 갇혀 ‘빈손 회동’ 땐 역풍

입력 2016-11-19 00:01



‘최순실 사태’를 바라보는 야권 대선주자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민심을 대변하는 동시에 국정 수습 해법도 모색해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다. 국민들의 시선이 우호적인 것만도 아니다. 야권 대선주자들이 국가적 위기 수습보다는 차기 대선을 먼저 생각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최순실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한 달 동안 야권 주자들의 ‘초반 성적표’는 ‘누가 깃발을 먼저 들었느냐’에 따라 갈렸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국가적 혼란을 성공적으로 수습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 원로와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들은 “격분한 민심을 정치권에서 제도화하지 못할 경우 ‘정부 대 국민’ 충돌 속 극단적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분노한 민심의 선택

최순실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주장도 가장 빨랐고, SNS와 거리연설 등에서 하야·탄핵 여론을 주도했다. 차기 대선 지지율은 수직상승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주간조사에서 지난달 마지막 주 5.7%를 기록했던 이 시장은 지난 17일 10.5%로 뛰며 ‘빅3’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의 신중론에 실망한 진보 성향 유권자가 결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시장을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그룹도 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그를 “야권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남 시정 복지 분야 등에서 성과를 낸 만큼 국정운영 능력을 증명했다는 반론도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보다 열흘 이상 빠른 지난 2일 박 대통령 하야를 공식 요구했다. 이후 즉각적인 길거리 서명운동에도 나섰다. 가칭 ‘정치지도자회의’를 제안해 20일 회동을 성사시켰다. 안 전 대표 지지율은 지난달 마지막 주 10.0%에서 17일 11.9%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야권 내 존재감이 크지 않다. 야권 지지층 상당수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제3당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 퇴진 당론 채택, 국회 추천 국무총리 인선 요구 등 의제 선점을 시도하고 있지만 야권 전체를 리드하지는 못하고 있다.

신중론의 명암

문 전 대표는 지난 14일 야권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늦게 퇴진운동에 합류했다. 대신 야권 선두주자로서의 중량감을 발휘했다. 그가 합류하면서 야권의 ‘반(反)박근혜’ 진영이 힘을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 후에는 리얼미터 조사에서 ‘부동의 1위’였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제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체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권 주자로 분류되는 반 총장 지지율을 끌어내렸지만 문 전 대표 지지율을 올리지는 않은 셈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의 확장력 한계를 지적한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18일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오히려 문 전 대표의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며 “20%대 초반 지지율로는 대세론을 자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실상 민주당의 지원을 못 받고 있다. 박 시장 측은 “문 전 대표와 박 시장 지지층이 80% 이상 겹친다”고 토로했다. 문 전 대표가 건재한 이상 박 시장이 약진하긴 아직 어려운 구조다. 선제적으로 박 대통령 퇴진 투쟁에 나섰음에도 지도부가 문 전 대표와 보조를 맞추면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제7공화국’을 내세운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개헌 논의가 힘을 잃으면서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20일 회동에도 불참을 통보했다. 회동에서 개헌 논의가 어려울 것으로 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야권 대권주자 중 지지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안 지사는 당장 ‘광장의 언어’보다는 제도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잠재력은 있지만 ‘구원투수론’에 갇혀 있다는 평가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 구도를 극복했던 김 의원은 촛불 정국에서는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vs 국민 충돌 막아야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은 “격분한 민심을 정치권에서 적절하게 제도화하지 않으면 이 흐름이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라도 정략적 생각을 하는 순간 먼저 망하게 될 것”이라며 “누란지위(累卵之危·알을 쌓아놓은 듯한 위태로움)에 있는 조국을 살려야겠다는 각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 핵심 관계자도 “국민적 분노가 커지면서 무당층(無黨層)이 늘고, 무정부 상태로 가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정부와 국민이 충돌해 극단적인 상황까지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권 주자들이 이번에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대권주자 측은 국회에서 실무준비회의를 갖고 20일 회동 명칭을 ‘비상시국 정치회의’로 정했다. 한 참석자는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총리 인선 등이 의제에서 빠질 수 없다”며 “당일 공통분모를 찾아 최종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야권 공조 강화를 위해 국민의당 천정배 전 공동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도 참석을 요청했다.

글=강준구 최승욱 기자 eyes@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