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와 닮은 듯 다른 듯… 재불화가 김기린 8년 만에 개인전

입력 2016-11-20 18:47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 개인전 전경. 초기 검은색에 대한 색채 탐구에 열중했던 작가는 1980년대 이후 적색, 청색, 황색, 녹색 등으로 색채 범위를 확장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재불화가 김기린(80) 화백이 8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1970∼80년대 유행한 한국적 모노크롬인 단색화가 조명 받으며 그런 범주에서 열린 여러 기획전에 초대되기는 했다. 온전히 개인전으로 관람객과 만나는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전은 회고전 형식으로, 1960년대 프랑스 체류 초기 작품까지 나왔다. 이 시기의 작품을 보면, 그가 단색화 작가와 선을 그어야 하는, 고유성을 가진 작가임을 알 수 있다.

1960년 한국외국어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그는 처음엔 불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미술로 전향했던 그가 60년대 후반 선보인 작품 세계는 빨강, 파랑, 초록 등 원색이 강렬한 기하학적 추상이다. 이후 절대 추상의 시대를 연 러시아 작가 말레비치(1878∼1935)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70년대 초반 선보인 ‘보이는, 보이지 않는(Visible, Invisible)’ 시리즈는 흰색과 검은색의 추상으로 유명한 말레비치에 대한 오마주다. 검은색 사각 안에 흰색이나 검은색, 혹은 빨강의 사각형이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검은색 안에 검은색을 넣은 작품은 마주하고 있으면 검은색의 심연으로 침잠해 명상하는 기분이 든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겹겹이 쌓아 올린 후 유화 물감을 칠하고 선을 음각해 고려청자의 음각 기법을 연상시킨다.

이런 작품은 한국의 모노크롬 운동인 단색화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의 ‘관제 민족주의’ 하에서 탄생한 시점보다 앞서 있다. 또 단색화가 백색 계열로 출발했던 것과 달리 그의 작품 세계는 흑색에 대한 색채적 탐구에 기반을 둔다.

1980년대 이후 시작한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시리즈에서는 색채 범위가 청색, 노란색, 갈색, 녹색, 빨간색 등 원색으로 다변화된다. 그런 점에서도 중간색 계통의 단색화와도 차이가 있다. 단색화가 국제적으로 조망 받으면서 비슷한 시기의 다른 추상작품까지 그 우산 아래 묶으려는 상업적 확장은 경계해야 할듯하다. 27일까지(02-2287-3585).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