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그냥 감상하는 게 좋은가, 현대미술 작품과 섞이고 충돌하며 자극을 끌어내는 것이 좋은가.
천혜의 습지와 인공의 국가정원을 갖춘 ‘대한민국 생태 수도’ 전남 순천에서 현대미술축제가 처음 열렸다. 2014년 4월 개장 이래 입장객 500만명을 돌파했다는 ‘순천만 국가정원’에서다. ‘2016 순천만 국제자연환경미술제’라는 이름으로 18일부터 한 달 간 열리는 행사는 자연환경 미술제라는 점에서 새로운 실험이다.
미술기획자 김성호(51)씨가 전시 총감독을 맡아 ‘낙원유람’이라는 주제로 26개국 58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공식 개막에 앞서 지난 17일 다녀왔다.
미술제는 국가정원의 서문쪽 일대에서 펼쳐진다. 각국 국가정원이 있는 동문 일대와 달리 서문 일대는 작은 호수(습지)가 자리해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더 강하다. 초겨울이라 한층 부드러워진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 나무 굴곡이 멋스러운 버드나무 등이 잔잔한 수면과 조화를 이루는 호수. 그 입구에 고개 숙인 사람 형상의 대나무 조각이 우뚝 서 있다. 총 3점의 대나무 조각 연작은 크기가 점점 작아져 수면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연속 동작을 보는 듯하다. 최평곤(58)작가의 설치 작품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인간의 탐욕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호수 위에는 조은필(37)의 ‘푸른 깃털’, 깃털이 배처럼 리듬감 있게 잇달아 서 있는 스위스 작가 로저 리고스(51)의 ‘날개’, 작은 배에 ‘인공 달’을 싣고 있는 허강(58)의 ‘만천명월’ 등 몇 점이 설치돼 있다. 어느 것도 압도적 크기로 감탄을 자아낼 만큼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습지 주변 정원 곳곳에도 작품들이 숨은 듯 있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승택(84)의 ‘기와 입은 대지’는 지붕 위에 서 있던 기와가 땅 위로 내려와 자연의 품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준다. 미국 작가 스티븐 시걸(63)의 ‘순천에서 엮다’는 7000㎏에 달하는 신문지를 나무 사이로 디귿(ㄷ)자형의 작은 요새처럼 쌓아올렸다. 작가는 “신문지 위로 버섯과 이끼 등이 자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 참여형도 있다. 태국의 젊은 작가 액차용 폰카존키지쿨(28)의 ‘균형’은 여인의 형상을 한 대나무 조각의 양쪽 손에 바구니 저울이 매달려있다. 관람객들이 돌을 하나씩 올려 양쪽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작품이다. 그는 “현실에서 낙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균형이 중요하다. 관람객이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된 작품은 하나 같이 ‘부끄러운 듯’ 전시돼 있다. 자연과의 부조화를 억제하기 위함이겠지만, 한 두 작품 정도는 ‘스케일의 존재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압도적 크기가 주는 숭고의 감동은 충분히 자연과 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부족이 스케일의 부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전시 기획자 A씨는 “10억원의 예산은 현대미술제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제습지센터 안에서는 실내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골판지 상자를 이용해 풍경을 부조하는 순천 출신 작가 양나희(34)의 ‘삶의 풍경‘,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웅덩이에 뛰어내리는 로맨틱한 자살 소동을 풀어낸 호주 작가 래이 해리스(46)의 비디오 작품 ‘도약(내 사랑을 위한)’, 갈대를 이용한 터키 작가 바톨 토팍(49)의 키네틱 아트 ‘자연의 리듬’ 등 장르가 다양하다. 하지만 전시 전용공간이 아니라 1층 로비와 복도 등에 설치됐다. 하나하나는 눈길이 갈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집중해서 감상하기에는 지나치게 어수선한 공간이다.
청주시에서 지난 9월 선보였던 ‘청주 직지코리아’도 전시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청주예술의전당 로비에서 열렸으나, 이번과는 대조를 보였다. 당시에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영국 디자이너에 인테리어를 의뢰해 붉은색 카펫으로 통일감을 줬다. 관객이 현대미술과 제대로 놀게 하려면 좀더 과감한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순천=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대자연의 품에 안긴 예술... 여기, 낙원이 있었다
입력 2016-11-20 18:48